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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Jul 04. 2023

인생의 귀인을 만나다

똥꼬 찌르기

면접을 앞둔 주말이었지만 전혀 긴장을 하지 않았어. 작은 프랜차이즈 카페 알바 면접이라 가볍게 생각해서가 아니야. 나란 사람은 그냥 면대면으로 사람이랑 말하는 자리를 참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 그랬어. 생각해 보면 이런 내 성격 때문에 합격한 알바와 회사도 있지만 떨어진 회사도 참 많아. 이런 나를 면접관 입장에서 역지사지해 보면, 아무래도 당신이 '면접관'인데 이렇게 당신 앞에서 가볍게 떠들어 재낀다는 게 사람이 참 가벼워 보였을 거야. 그러니까 이런 내 성격이 누군가한테는 절대적으로 마이너스적인 성격이라는 거지. 긍까, 뭐든 반대급부는 존재한다는 거야.  


성격에 대한 얘기는 이쯤 하고 다시 본론으로. 면접을 앞두고 긴장과 걱정과 같은 감정은 없었지만 작은 고민이 하나 있었어. 당시 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던 2년 내내 머리를 길러서 장발이었어. 그래서 이걸 잘라야 하나 말아야 하는 아주 소소한 고민을 했어. 이 소소한 고민은 소소한 만큼 소소하게 지나갔어. 그냥 머리를 안 자르고 면접을 보러 갔거든. 왜냐 '설마 머리 때문에 사람을 안 뽑겠어?', '2022년 대한민국에서 머리가 길다고 뭐라고 하는 사장이 있겠어?' 이런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거든. 진짜 이렇게 적고 보니까 참 자기중심적이었다. 


면접 당일 나는 긴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면접을 보러 갔어.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뽑아주기 싫은 몰골이야. 어쨌든 처음 가보는 동네라 조금 헤맸지만 일찍 나온 덕분에 늦지는 않았어.(33년 살아온 사람으로서 인생 꿀팁을 하나 주자면 초행길은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거야. 명심해.) 그리고 사장님이 알려준 장소에 도착할 때쯤 문자가 왔어. 


'카페 도착하면 안 쪽으로 들어오세요 :)'


면접장소였던 카페에 들어가니 몇 팀이 있더라. '미래에 우리 사장님은 어디 있으실까?' 하면서 카페를 훑어보는데 '제발 저기 앉아있는 저분이 사장님이어라'하는 생각이 드는 분이 내 시야에 들어왔어. 뒤통수가 젊은 여성이었어. 왜 뒤통수가 여성이었던 분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냐고? 내가 남자들의 마초문화를 혐오하는 수준으로 싫어하거든. 전역을 결심할 때도, 전 직장을 그만둘 때도 남자들의 마초문화가 싫었던 이유가 참 컸어. 이런 바람과 함께 그 뒤통수가 젊은 여성분 근처로 슬쩍 가서 살짝 눈치 보면서 여기 온 나의 목적을 조심스럽게 건넸어.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는데요. 혹시?'

'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내 바람은 이뤄졌어. 뒤통수뿐만 아니라 앞모습도 젊었던 여자 사장님과의 면접말이지. 면접이 시작되고 사장님의 첫 번째 질문은 너무 인상 깊었어. 왜냐면 1편에 알바 지원 문자내용을 보면 알 수 있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 질문을 듣고 0.5초 동안은 사장님을 향한 당황스러움이었어. '뭐지? 면접 보러 온 사람한테 이름을?' 하지만 그 0.5초 이후에는 과거의 나를 향한 당혹감이 겁나 몰려왔어. '와 ㅅㅂ 어떻게 그따위 실수를...' 0.5초가 흐르고 머리가 찌릿했고 곧장 사장님한테 보낸 알바 지원 문자를 확인했거든. '세상에 지원서에 이름을 안 쓰는 지원자가 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 덕분에 웃으면서 면접을 시작할 수 있었어. 참 그 순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해프닝으로 자연스럽게 넘기는 것도 능력이다. 뭐 어쨌든 면접은 잘 끝냈어. 면접 질문에 대해 조금 말하자면 형식적인 내용만 오고 갔다고 보면 돼. '알바경력', '카페 알바 잘할 수 있냐?', '갑자기 잠수 안탈 책임감이 있냐?' 뭐 이런? 결국 이 사람이 가진 책임감의 정도를 보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 나는 이런 질문이 참 이해가 됐어. 나 역시 자영업자 지인들로부터 옴서 감서 알바생들의 낮은 책임감에 관한 부정적 일화를 많이 접했거든. 특히, 조금만 뒤틀리거나 맘에 안 들면 그냥 잠수 타고 런해버리는 일화를 말이야. 


아! 면접이 끝날 때쯤 나도 사장님한테 질문을 하나 했다. '제가 남자치고 머리가 좀 긴데, 머리를 꼭 잘라야 할까요?' 위에서는 쿨한척 했지만 진심은 쿨하지 못한 '하남자'였다는 거야. '하남자 특' 속으로 신경 씀. 사장님의 대답은 '뭐 알아서 하세요' 이런 뉘앙스였어. 머리에 관한 질문을 끝으로 진짜 면접은 끝이 났고 카페를 나오면서 친구한테 짧은 면접 후기 카톡을 보냈어. '나 일할 카페 사장님 우리랑 동년배 같은데? 그래서 말도 잘 통하고 괜찮을 것 같음'. 정말 딱 이 느낌이었어. 카톡을 보낸 나는 곧장 '요식업' 알바생이라면 무조건 제출해야 할 '보건증'을 발급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어. 그래 똥꼬 찌르기를 해야 한다는 거지.  


요식업 알바를 안 해본 사람들한테 한 가지 정보를 주자면. 우리나라에서 음식물을 만들고 판매하는 요식업장에서 일하려면 '이 사람은 전염성 세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국가에서 인증해 주는 증명서가 있어야 해.(유효기간은 1년이고, 계속 일한다면 매년 갱신해야 함) 그게 보건증이라는 거고, 걍 안 받고 단속을 피하면서 불법적으로 일할 수도 있어. 근데 그런 철면피가 아니라면 무조건 받아야 해. 그 검사 과정 중에 대장?에 전염성 세균이 있는지 검출하기 위해 의약용 면봉을 똥꼬에 쑤셔서 제출해야 하는 절차가 있어. 코로나를 검사하기 위해 코에 쑤셨던 면봉을 똥꼬에다가 쑤신다고 생각하면 됨. 그리고 이 검사가 나를 포함해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절차야. 더러운 얘기는 여기까지. 


찝찝한 검진을 끝내고 집에 도착한 나는 찝찝함을 씻어내기 위해 곧장 샤워를 했어. 시원하게- 찝찝함을 씻어내고 나왔는데 사장님한테 오리엔테이션, 교육일정이 적힌 '카톡'이 와있었어. 문자와 카톡의 가장 큰 차이점은? 카톡은 문자에 비해 조금은 '덜 프라이버시'하다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지. 나의 오너님의 정보가 궁금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사장님의 프로필사진을 눌렀어. '어머나 세상에' 사장님이 나와 동년배라 생각했던 나는 놀라고 말았어. 왜냐면 울 사장님은 아이가 있는 엄마였어. 그 아이도 꽤 큰 아이였어. 


'동년배가 아닐 수도?'


이 의문을 품고 오리엔테이션과 교육 날짜를 기다리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어. 그리고 오랜만에 일을 한다는 생각에 참 많이 설레더라. 가슴한편에 사표를 품고 매일 퇴사를 생각하는 직장인 혹은 알바생이라면 이런 내 설렘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도 이런 감정이 생길 거라고는 몰랐거든. 이 설렘에 대한 이야기를조금 길게 풀어써볼게. 먼저 이 설렘이 어느 카테고리에 있는 설렘인지 정의하자면 '드디어 세상 혹은 사회의 일환이 된다는 기쁨에서 오는 설렘'이야. 직장을 그만두고 2년 가까이 공부만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마음 한편에 '나란 존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탈락한 존재야'라는 패배의식이 자라나고 있었어. 어디에 표현은 못했지만. 그리고 이 패배의식이 조금씩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고. 근데 며칠 뒤에 내가 다시 사회구성원이 된다는데 이게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 일이야? 안 그래? 안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고. 


나의 존재와 상태에 대한 설렘은 곧 사장님을 향한 고마움과 충성으로 향하더라. 그래 그 시점에서 만난 우리 사장님은 내게 정말 소중한 귀인이었던 거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점점 더 깊은 음지로 떨어져 가는 나의 손을 잡아 주고 다시 양지로 끄집어 올려준 사람이란 말이지. 사장님은 절대 당신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모를 거야. 뭐 이런 마음으로 시작됐으니 어쩌겠어? 아직 같이 일도 안 하고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무한충성을 다짐한 거지. 사람에 대한 실망은 차차 그때그때 하면 되는 거고 시작은 좋게 하자고 :) 


그리고 며칠 뒤 기다리던 오리엔테이션과 교육일이 됐어.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야기의 모든 내용과 등장인물은 상상에 기반된 픽션이자 가상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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