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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Jul 15. 2019

일간 크로스핏 : 혐오와 박제 사회

박제하는 이들의 역지사지.


'빽판'은 크로스핏 박스 라면 운동기구와 더불어 반듯이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빽판에는 WOD (Workout of the day)와 당일 운동 참여자와 참여자들의 기록이 적혀있다. 운동 시작 전 크로스피터들은 빽판에 적힌 WOD를 보며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WOD를 진행할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아 물론, 나는 타이슨 형님의 명언을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빽판에 적힌 WOD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face ; 모두 다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한테 처맞기 전까진."


크로스핏은 자신과의 경쟁을 하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기록 운동이기 때문에 개인 혹은 경우의 따라서 수명을 마음속 라이벌로 두기도 하며 그 라이벌들은 주로 자신과 같은 크로스핏 박스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과의 경쟁과 라이벌 간 긍정적 경쟁의 불씨를 붙이고 기름을 붓는 역할은 빽판이 한다. 앞서 얘기했듯 빽판에는 그날 WOD 참여자와 그 참여자들의 기록이 적혀 코치님들이 운영하는 카페 사이트에 박제되고, 그렇게 박제된 기록을 통해 과거 나와의 경쟁은 물론 마음속 라벌들의 기록을 보며 두구 두고 보며 비교, 경쟁할 수 있다.


나는 주로 나와의 경쟁을 위해 빽판을 본다. 마음속 라이벌이 없기도 하고 원체 경쟁심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은 기록이 빽판에 박제되는 날이면 어깨뽕이 치솟고 자부심이 뿜뿜한다. 더불어 마음 한편에는 박제된 내 기록이 나를 마음속 라이벌로 둔 이들에게(물론 없겠지만,,,) 어떤 경쟁의 불씨를 붙이고 있기를 바라는 욕심도 있다. 곧 크로스피터 2년 차인데 아주 조금은 누군가의 모범이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랄까? (크로스핏 2주년 선물을 준비해야지! 기가 막힌 명분이다 헤헤헤헤ㅔㅅ이렇게 통장은 텅장이 되지요)


하지만 박제라는 것이 늘 가볍고 긍정적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박물관도 아닌 SNS 상에서 '박제'라는 행위가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단지 내 기억에 의지한 추측이다.) 초기 SNS에 박제되는 게시물 혹은 게시글들은 주로 누구나 인정하는 범죄성 짙은 글과 범죄를 예고하는 글들이었다.  박제된 글을 통해 인터넷을 하는 누구나 누군가의 심각한 범죄행위를 알게 되고, 기억하고, 비판하고, 예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박제라는 행위는 초기와 다르게 굉장히 혐오스러운 도구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단지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의견을 밝힌 사람의 글을 박제하고 공유해 그 글(메시지)이 아닌, 글을 쓴 사람(메신저)을 집단 폭행하듯 비난하고 혐오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 비난의 수위는 차마 입으로 아니 글로써 담을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러운 수준이다. 더럽고 더럽디 더럽다는 것이며, 그 혐오스러운 박제 행위에 동조하는 이들 대부분 그 행위가 참으로 신성한 행위 혹은 정의구현이라는 오만하고 더러운 착각과 자기 세뇌에 빠져있다. 자신들의 행위가 '신성한 행위', '정의구현'이라는 착각과 자기 세뇌에 빠져있기에 더욱 이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박제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비생산적인 무책임한 갈등만 생산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런 그들도 SNS에 게시물, 게시글을 게시하는 메신저로써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고 그 행위를 멈춰보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메시지가 박제되고 그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인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무논리적 불쾌한 혐오만 가득한 집단폭행 같은 비난을 감수, 감내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말이다. (아 보통 그런 대부분의 것들은 감수하지 못하겠던지, 메시지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시작되면 자신의 메시지가 박제되기 전에 글삭하고 빤스 런 하더라...)


오늘의 일간 크로스핏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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