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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Jun 25. 2019

일간 크로스핏 : 토끼와 거북이.

꾸준함에 대한 이야기

크로스핏을 시작한 뒤로 친구들 혹은 타자에게 가장 많이 듣는 칭찬이 하나 있다. 바로 꾸준함이다. 그들이 나에게 꾸준함을 내가 가진 장점으로 칭찬하는 이유를 한 가지 추측해본 건데, 내 근황을 묻는 '요즘 뭐해?'라는 질문에 내 대답이 늘 한결같기 때문일 것이다. 


"글 쓰고, 크로스핏 하고, 그림 그리고 그렇지 뭐 특별한 거 없이 똑같아"


더불어 내 한결같은 대답을 들은 그들의 반응 역시 이상하게 늘 한결같다. 


"꾸준하네" 혹은 "아직도? 안 질리냐?"


그들의 반응도 그럴 것이 2017년 미한과 연애를 시작한 해 동시에 크로스핏도 시작했고, 미한과의 연애를 하루도 쉬지 않은 만큼 크로스핏 역시 하루도 쉬지 않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미한을 만나지 못한 것처럼 등록일수 기준으로 따졌을 때 말이다. 그러나 내 한결같은 대답만큼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크로스핏을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 고민이 있었고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금전적인 문제에서는 늘 망설임과 고민이 생겨났었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내게 크로스핏 한 달 회원권 비용은 당연 부담스러웠고, 크로스핏을 해왔던 시간 늘 내 지갑과 통장은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월급이 통장에 잠깐 들렸다 사라져 텅장이 될 때면 크로스핏을 쉴까 말까 고민을 하고는 했다. 


그 고민도 잠시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내 다른 곳에서 아껴 쓰지 하는 마음으로 크로스핏에 회원권 연자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고 다시금 회원기간을 연장을 하고는 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순간에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늘 크로스핏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며 크로스핏을 선택한 이유는 타자가 내 장점인 '꾸준함' 대해 칭찬해주는 만큼 내 판단으로도 역시 '크로스핏을 꾸준히 하는 꾸준함'이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자부심이고 자랑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잠시라도 크로스핏을 쉬게 되면 내 자부심 이자 장점이 송두리째 없어질 것 같은 불안함도 마음 한편에 잠식돼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표적인 SNS인 인스타그램은 자신이 올리는 게시물 외에 다른 사람이 올린 게시물도 저장해놓을 수 있는 정말 좋은 기능이 있다. 나는 그 기능을 통해 미한과 함께 가고 싶은 맛집과 핫플레이스를,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룬 선구자의 게시물 중 내게 영감을 주는 게시물을, 해보고 싶은 WOD를 완료한 후 인스타에 올린 크로스피터들의 게시물을, 무언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사진 혹은 이미지로 나를 매료한 게시물을,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써져 있는 게시물을 저장해 놓는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특정 인물들의 게시글이 자주 저장되고, 그 특정 인물들의 게시글은 대부분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 그리고 좋아요를 받으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 그리고 나와 더불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게시물이 자주 업데이트하는 분의 새로운 게시물이 게시되었다. 역시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었지만, 나는 그 게시물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오히려 화까지 났다. 그 공감할 수 없음을 그 화를 '열폭 혹은 '열등감'이라 손가락질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감추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 글은 꾸준함에 대한 글이었고, 그 사람은 나를 전혀 모르지만 나를 저격하는 글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든 생각인데, 꾸준히라는 건 내 인내력에 대한 테스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꾸준히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고, 꾸준히 해서 발전을 하는 게 어려운 일 아닐까"  


그는 그 글에서 중요한 것으로 '발전'을 얘기했지만, 내게 발전이라는 말은 언제나 너무나 어려운 숙제였다. 무엇이든 누구보다 먼저 시작하고, 행동하더라도 나는 결국 늘 더뎠고 추월당해 뒤쳐져왔기 때문이다. 발전하지 못함을 마주하고  추월당함을 마주하고 뒤쳐짐을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해왔다. 꾸준함이  언제가 더딤과 뒤쳐짐을 뒤덮는 빛을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과 신념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글을 통해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 내가 가진 유일한 자부심 더불어 신념이 일순간 부정당했다. 그의 글 그리고 그 글에 공감한 수많은 이들에 따르면 나는 결국 누구나다 할 수 있는 걸 장점이랍시고 내세웠던 것이고, 자부심과 신념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수많은 생각이 들었고, 생각이 깊어갈수록 열폭과 열등감을 넘은 비참함까지 느껴졌다. 


그의 말에 따라 내 꾸준함이 아직 이룬 것이 없는 그저 인내력 테스트에 불가했다. 그의 게시물처럼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은 경험도 없으며, 그의 사회적 지위나 위치만큼 내 지위와 위치가 그 자리에 자리잡지도 못했으며, 그의 능력처럼 내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선택받지도 못했다. 내 과거와 현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에 대단히 뿌듯해하며 살아온, 자기만족에만 그쳐버린 세월만 살아온 보잘것없이 비참한 시간이었다. 


하, 그러나 비참하다고 좌절하고 쓰러져있어 뭐하나. 인생은 길다. 내 장점과 신념이 보잘것없더라도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이것뿐인걸. 그러니 지금 당장 외부에서 인정하는 발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인내력 테스트로 만족되고 마는 이 꾸준함이 부정당하고 무시당하더라도 내 장점과 신념을 믿고 나아가기를 결정했다. 이 비참한 인내력 테스트가 결국에는 빛을 발휘함을 믿어보겠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흔하디 흔해 누구나 가지고 있음에도 이 꾸준함이 내 마지막 동아줄인 것을. 썩은 동아줄인지 쨍쨍한 동아줄인지 지금을 알 수 없으니 일단 매달리고 올라가 보자. 언제나 밧줄 타기 하나는 자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일단 오늘도 꾸준히 해오던 그 모든 것들을 무사히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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