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와 주입에 반대하는 글
한참 전 성공하는 이들은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난다며 모든 이들에게 아침에 일찍 일어남을 강요했던 시대가 있었다. 시대의 흐름의 맞춰 서점가에도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는 책들이 즐비했고, 나의 책장에도 한 권 자리 잡았었다. 하지만 아침형 인간의 성공은 지극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고, 오히려 아침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돼서 아침 일찍 잡아먹히는 벌레가 될 뿐이었다. 결국 조금의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는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던 이들과 그런 서적을 비웃고 조롱하는 개그가 유행했고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도 그 개그와 의식이 전파됐다.
"제 경험상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입니다."
'아침형 인간'의 지나친 강요는 결국 조롱거리와 놀림거리 취급을 받게 되는 본전도 못 건지는 결과만 낳고 끝이 났다. 더불어 그 시점에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는 책은 내 서재에서도 쫓겨나 아파트 폐지함으로 향하게 됐다. 이 사건은 A라는 행동이 결과와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A 행동과 다른 B, C, D.. 등과 같이 다른 행동에 대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A 행동만 주입하고 강요하게 됐을 때 어떤 말로를 맞이하는지 내게 보여준 아주 좋은 선례가 됐다.
'아침형 인간' 사건이 어떤 말로를 맞이하는지 두 눈으로 목격한 나는 아주 깊은 다짐을 하고 실천을 하고 있다. 그 다짐과 실천은 어떤 특정 행동이나 습관이 내게 긍정적 변화나 영향을 주더라도 그 특정 행동이나 습관을 나와 다른 타인들에게 절대로 강요나 주입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특정 행동이나 습관을 지속하며 타인들에게 지속 노출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타인들에게 스며들어 긍정적 영향을 주고자 할 뿐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우선 나는 크로스핏을 시작한 뒤로 살도 빠지고 근육도 생기고 바디 프로필이라는 버킷리스트도 달성했고, 크로스핏뿐만 아닌 다른 도전을 시작하고 이뤄낼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를 얻었다. 그렇다고 해서 크로스핏이 진리인 듯 타인들에게 무조건 "야! 크로스핏 해, 크로스핏 쩔어! 나 크로스핏 하고 개 쩔어 졌음!" 이라 말하며 강요하고 주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요와 주입 대신 타인들이 보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그냥 내가 크로스핏 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럼 노출된 글이나 사진 영상 등등을 본 타인들은 자연스럽게 질문을 시작하고 우리는 소통을 시작한다.
"야 요즘 뭐 하는데 쩔어?"
"어, 나 요즘 크로스핏 해 :)"
"야 좋은 거 혼자 하나 나도 한번 해보자!!"
"크로스핏은 정식 지부에서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나는 송내역에 있는 송내 유일 크로스핏 정식 지부 크로스핏 거츠에서 해"
"오 우리 집이랑 가깝네 가봐야겠다!!"
"그래 시간 날 때 한번 와봐 코치님들도 좋고 좋은 사람들도 많아"
자연스러운 노출과 소통을 통해 내가 원하는 바와 같이 긍정적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타인들에게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가령 위와 같은 행동은 크로스핏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아침 수영, 독서, 글쓰기, 연애, 그림, 유튜브,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등 모근 것이 해당된다.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방법,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방법, 세상 사람들과 공감하고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방법과 방식 그리고 모든 것들의 수단에는 단 한 가지 방법, 단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남들과 생각하는 게 다르듯,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 그러니까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식과 수단에는 단 한 가지 방법만 있다 생각하고 그 방식을 은연중 주입하고 강요하는 이들을 목격할 때가 있다. 그런 그들은 그 방식에 '뽕'에 취하듯 취해 있어, 그 방식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하찮게 그리고 우습게 보는 태도와 의식을 대화나 글을 통해 노출한다.
"내가 책 좀 읽고 글 좀 쓰면서 느낀 건데, 책 안 읽고 글 안 쓰는 사람들은 좀 그런 것 같다"
"요즘 내가 뭐에 대한 공부를 하는데 뭐를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은 좀 그런 것 같다."
이렇듯 그들의 말과 글에는 자신들이 선택받아 깨우친 존재라 느끼는 선민의식에 가득 차있다. 더불어 그들 중 일부는 그 행동에 대해 비판을 받아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자신의 생각을 굳히기에 이른다.
"네가 제대로 해보질 않았으니까 그런 소리 나 하고 있는 거야! 한심하다 한심해"
"너의 공부량이 부족한 거야, 더 읽고 더 공부하고 와봐! 그런 소리가 나오나!"
그리고 최근에는 '일뽕' 맞은 선민의식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며 이런 말을 지껄인다.
"지금 이성적이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감정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며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제발 이성을 찾아 불매운동을 멈추고 반일 감정을 그만 부추겨야 합니다."
근데 그들이 지껄이고 있는 이 말은 일제강점기 시절 3.1 운동이나 독립운동을 펼치는 이들을 향해 '친일파'들이 외쳤던 말과 결이 같다. 더불어 한 발짝 더 나아가 '정부의 외교 참사'라는 매국일보와 자민당 한국지부의 워딩도 그대로 사용하며 자신들의 일뽕을 표현한다.
"코리안 패싱이라 불리는 정부의 외교 참사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 정부는 이제 그만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그만 부추기고 일본에 사과하고 기분을 풀어주며 애먼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들의 주장과 말에 따라 '정부의 외교 참사'가 맞는 표현이 되려거든 주어를 바꿔야 한다. 지난 '친일 정부' 혹은 '일본 정부'로 말이다. 지난 친일정부 시절 제대로 된 '한국 국민'은 늘 피눈물을 흘렸고 울화통이 터졌다. 반대로 일뽕에 취한 친일 선민의식을 가진 종속들은 눈치 안 보고 친일과 트일 뽕을 존중받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한민국 국민의 정부라면 친일과 일뽕의 존중보다는 한국 국민의 피눈물을 먼저 닦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제야 한국 국민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울화통을 식혀주는 제대로 된 외교가 시작된 것이다. 제대로 된 한국 국민을 위한 외교로 인해 일뽕과 친일을 존중받고 자랑스러웠던 시절이 끝났다고 일뽕과 친일이 눈치 보인다고 장황하게 징징대려거든 일본으로 국적이나 먼저 바꾸고 징징대기를 추천한다.
끝으로 자신이 지닌 태도를 의식하지 않고 주의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선민의식을 갖고 자기만의 방식을 타인에게 주입하고 강요하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때문에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지내는 사람처럼 되지 않기 위해 세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넓은 시야와 다양한 경험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어쩌면 책만 읽던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맨몸 운동만 하던 내가 크로스핏과 수영을 시작한 것이, 인스타그램만 하던 내가 브런치와 유튜브를 시작한 것이 내게 전보다 더 넓은 시야와 다양한 경험을 가지게 해 준 것 같다. 더 넓어지고 다양해진 경험 속에서 다양한 생각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그런 그들과 소통을 하며 다양한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이 맞다면, 앞으로도 나는 그 어떠한 것도 흥미가 생기고 시간이 생긴다면 계속 시작하고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 세상에는 단 한 가지 진리, 단 한 가지 방법, 단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