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입니다. 2005년 계간 《시인세계》의 설문조사에서 백석의 시집 『사슴』은 현역 시인 156명이 뽑은 ‘우리 시대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지난 2003년도 대입 수능시험에 시 <고향>이 지문으로 출제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사실 가장 많이 회자된 백석의 이야기는 아마도 길상사(吉祥寺)를 시주했던 기생 자야와의 사랑 이야기일 겁니다. 알려지기로는 자야를 사랑했던 27세의 백석이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기 위하여 스스로 연인 곁을 떠난 자야를 다시 찾아가던 날 밤 손에 쥐어준 시가 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지요.
백석과 자야의 애틋한 사랑이 빛나던 그들의 20대 청춘 시절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백석은 꽤 오랫동안 포옹 한 번 못한 여인, 박경련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의 “통영 시대”로 알려진 초창기 시의 상당수가 통영 여인 박경련을 향했다는 것도 꽤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첫눈에 반한 숙명여고보의 여학생, 박경련을 만나기 위해 그 먼 통영을 몇 번이나 방문했고, 풋풋한 그리움을 담은 아름다운 시 <통영>, <시기의 바다> 등은 박경련을 향한 연서였습니다.
통영(統營)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港口)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백석의 시 중에서 가장 에로틱한 은유로 넘친다는 평을 들었던 시 <통영>입니다. 실제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친구 신현중과 그녀의 집까지 찾아갔으나 박경련의 사촌오빠와 객줏집에서 식사만 하고 돌아와야 했고 그 후에 쓴 시가 이 <통영>입니다.
백석에 대한 몇몇 돌아다니는 기사나 일화들에는 백석이 첫사랑 박경련이 결혼하여 실연의 상처로 방황하던 중 기생 자야를 만나 사랑을 시작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시기적으로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근무하던 백석이 함흥관에서 자야를 보자마자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 따위는 없을 거야!”라고 외치며 그녀의 품을 파고들던 때는 그가 스물다섯이던 1936년. 자야와 만난 이후에도 백석은 친구 허준과 다시 통영으로 가서 박경련의 집에 청혼을 했습니다. 짐짓 의아한 그의 이런 연애사는 ‘기생’이라는 독특한 신분의 여자를 대하던 당시의 정서를 가늠하게 해 줍니다.
백석이 자야를 만났던 그 이듬해 4월, 절친이었던 친구 신현중은 박경련의 집안에 백석의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는 그야말로 ‘소문’을 전해준 후, 얼마 뒤 그 자신은 이전 약혼녀와 파혼하고 박경련과 결혼을 하기에 이릅니다. 가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의 완벽한 구한말 버전입니다. 첫사랑(짝사랑)과 친구를 동시에 잃은 백석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의 상실감은 매우 컸으며 절망, 분노, 한탄의 마음을 담은 수필과 시들이 연이어 탄생했지요. 그들이 결혼한 그다음 해, 백석은 집안의 강요로 어떤 여인과 억지 결혼을 해야 했지요. 그러나 백석은, 서울로 도망치듯 홀로 내려와 있던 자야를 다시 찾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은 날로부터 그녀와 약 2년 정도 연애다운 연애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야와 이별한 후 몇 년 후인 1941년, 30세의 백석이 남긴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는 또다시 첫사랑 여인을 그려고 있습니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은 만주에 살던 그에게 통영은 까마득히 먼 바닷가, 즉 친구 신현중과 첫사랑 박경련의 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추억과 동시에 아픔이었을 겁니다.
당시 30~40원짜리 양복을 입던 친구들과는 달리 무려 200원짜리 맞춤양복을 입었고, 남들이 20~30전짜리 양말을 신고 다닐 때 1~2원 양말만 고집했던 ‘모던보이’ 백석. 숱한 여인들과의 스캔들, 서너 번의 결혼과 이혼, 그 질풍노도와 같은 연애사는 1945년 34세의 나이로 무려 14세 연하의 리윤희와 결혼하면서 멈춘 듯 보입니다.
1960년 북한에 살던 49세의 백석의 마지막 동시 <앞산 꿩, 뒤’산 꿩>은 경성 밤거리를 쏘다니던 모던보이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져 있습니다.
아침에는 앞산 꿩이
목장에 와서 껙껙,
저녁에는 뒤’산 꿩이
목장에 와서 껙껙
아침저녁 꿩들이 왜 우나?
목장에 내려와서 왜 우나?
꿩들도 목장에서 살고 싶어 울지
꿩들도 조합 꿩이 되고 싶어 울지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던 모던보이 백석. 그의 사랑과 슬픔이 새삼 그리운 가을밤입니다.
참고한 이야기
『백석평전』, 안도현, 다산책방 (2014)
영화 <해어화> 중에서 "사랑, 거짓말이" ( 노래: 한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