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 and the AI」 Chapter 2.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인공지능(AI) 남자친구와 결혼하겠다는 여자의 소식을 들은 건 2024년 1월이었다. 한때 베개랑 결혼한 남자가 화제가 되더니 기어이 인공지능과 결혼하겠다는 여자가 나타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다소 의아했다. 사진 속 AI 남자친구 ‘아이렉스(AiLex)’는 늙고 배가 나온 데다 머리가 살짝 벗겨진 모습이었다. 여자의 이름은 알리시아 프라미스. 스페인 출신의 현대 예술가다. 즉, AI 남자친구와의 결혼은 일종의 예술적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스스로 ‘하이브리드 커플’이라 명명하고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보에 열심이었다.
알리시아의 인스타그램에는 아이렉스와 일상을 보내는 영상이 여러 편 업로드되어 있다. 후드를 벗은 알리시아는 아담한 체구에 붉게 염색한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영상 속 아이렉스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알리시아는 아이렉스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실 거냐고 물었다. 평범한 동거 커플의 일상처럼 보였다. 이를 보고 <세계 최초로 홀로그램 AI와 결혼하는 여성..."새로운 시대의 사랑 보여줄 것">이란 제목의 기사를 한편 썼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홀로그램이 설거지를 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연인의 일상처럼 보이도록 연출된 영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예술가가 미래의 한 장면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늘 문학과 예술로 먼저 구현되고 과학 기술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한편, 기사를 쓰면서도 의아한 점이 있었다. 내가 만약 AI 남자친구를 만든다면 이상적인 외모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리시아는 전 남자친구들의 데이터를 조합해 아이렉스를 만들었다고 했다. 아마 사진, 영상, 서로 나눈 메신저 대화 등을 말하는 것 같았다. 기껏 과학기술로 완벽한 이상형을 만들 기회를 버리고 지난 연애의 기억을 조합해 만든 이유는 뭘까?
잠깐 내 지난 남자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데이터를 조합해 AI 남자친구를 만든다면 어떨까? 순간 프랑켄슈타인처럼 ‘전’남친의 얼굴과 ‘전전’남친의 상체와 ‘전전전’남친의 하반신을 합쳐 놓은 꼴을 상상했다. 속이 메슥거렸다. 그렇게 만든 AI를 홀로그램으로 구현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 봤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손에 힘이 풀렸다. 이건 호러영화나 다름없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아 기사를 쓰다 말고 뛰쳐나왔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러 간 곳은 동네 단골카페였다. 망원동에 있는 작은 카페는 부부가 운영했다. 물자국 하나 없이 광택 나는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로 검은색 주전자, 저울, 커피드리퍼, 믹서기, 로스팅머신 등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남편이 원두를 볶고 에스프레소를 내리면, 아내는 커피와 음료에 들어가는 시럽과 소스를 만들었다. 좁은 주방에서 서로 몸 한번 부딪히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에 스팀을 치더니, 잎사귀 모양이 그려 따뜻한 라떼 한잔을 내놓았다. 전 남자 친구 데이터를 학습한 AI와 결혼한다는 여자에 대해 기사를 쓰면서 어지러웠던 마음이 이 현실커플을 보면서 안정되는 것 같았다.
손으로 쥔 커피잔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소하고 달콤한 우유냄새와 끝맛이 부드러운 커피 한 모금. 이제야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한숨을 길게 쉬고는 뒷정리를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아이렉스와 우유를 담은 주전자를 씻는 사장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저희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둘 다 어른되고 동창회 갔다가 만났어요.
그럼 알고 지낸 세월이 모르고 지낸 세월보다 더 길겠네요.
그렇죠. 연애하고 결혼생활까지 합치면 30년이 다 됐으니까.
인간과 인간의 관계. 친구에서 시작해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는 익숙한 이야기. 이런 관계들이 이젠 과거의 유물이 되고 앞으로는 알리시아가 말했듯 “로봇과 홀로그램과의 사랑과 섹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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