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남편연구소 Mar 21. 2021

부부회화: '그럴 리가' 보다 '그럴 수도 있겠네'

많은 남편들이 그렇듯 저 역시 결혼 이후 지금까지 아내의 마음을 꽤 많이 아프게 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대화 중에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아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그럴 리가 없어' 같은 표정을 짓거나 아예 말을 못 하게 막아버릴 때였고, 두 번째는 아내가 아쉬운 감정을 드러낼 때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라며 억울함을 담은 삐친 행동을 할 때였습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인내력으로) "내가 말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말해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엔 '아.. 차차..' 하며 잘못을 깨달았고, 요즘엔 꽤 자주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당신 정말 많이 변했네."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죠. 


물론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사유(저의 유치함)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에 현장에서 'ㅇㅇ 때문에 당신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면 저도 아내도 마음이 풀리곤 했지요. 그런데 요즘엔 아내와 의견이나 감정의 충돌이 있은 후에 '미안해'라고 말을 하면 예전과 다른 마음이 앙금처럼 남아있었습니다. 뭐랄까.. 억울함(?)이랑 비슷한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엊그제 아내와 자가격리 지원금 신청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아내와 대화의 접촉사고(?)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인터넷에서 찾은 서울시 기준으로 이야길 했고, 저는 구청에서 담당자가 정하기 때문에 서울시 기준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길 했습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결론은 '받을 수도 있으니 일단 신청해 보자'였는데, 아내는 제가 말을 못 하게 막았다고 서운해했고, 저는 '서울시'와 '구청'이 같은 기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듣고도 인터넷으로 봤다고 말하는 모습이 서운했습니다.  


먼저 아내의 말을 막은 것에 대해선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했고, 아내는 또 한 번(놀라운 인내력으로)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최근에 느꼈던 감정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어떤 마음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 여보, 요즘에는 내가 당신에게 사과를 하고 나면 예전이랑 다르게 뭔가 다른 느낌이 마음에 남아 있어.

아내 : 그래? 그게 어떤 건데?

 : 음.. 나도 당신에게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듣고 싶은 마음.. 내 이야기도 틀린 이야긴 아니었잖아.

아내 : 아.. 그래? 

 : 요즘엔 나도 당신한테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듣고 싶은 거 같아.

아내 : 근데 당신 정말 많이 변했다. 어쩌면 30분 동안 나랑 이런 이야길 웃으면서 하지? 

         옛날 같으면 벌써 사과하고 다른 방으로 갔을 텐데.. 

 : (마스크를 써서 눈만 보인 게 다행이라 여기며) 그런가? 당신 덕분에 좀 많이 변하긴 했지. 


대화가 어떻게 끝난 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서로의 마음은 개운(?)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내가 보내준 카톡에는..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쓰여 있더군요. 



Small things ofte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