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소에 스스로를 '미맹'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맛에 민감한 편은 아닙니다. 그래도 나름 맛집을 찾아다닌 시절도 있었고, 음식 사진을 열심히 찍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함께 갔던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면 맛집으로 기억해뒀기 때문에, 맛집인 거 같으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먹었기 때문에 미맹치곤 맛집을 잘 아는 사람이 되었죠.
지난 수요일에 아내가 확진이 되고, 목요일에 저와 딸아이가 확진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사이좋게(?) 확진이 되어 집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 오늘까지 일주일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먹었고, 결혼 후 처음으로 매일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식구'였지요. 그런데 오늘 저녁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 보니 '무얼 먹었나?' 싶더군요.
언젠가 '미각의 90%는 기억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와.. 이거 정말 동감 10000%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떨어지고 아버지께서 사주신 까끌한 보쌈, 처음 외국에 가서 먹었던 밍밍한 샌드위치, 전역하는 날 아침에 먹었던 따뜻한 삼계탕, 아내와 처음 만나서 먹은 크림 파스타, 프러포즈를 할 때 먹었던 해물 떡볶이 까지.. 제가 '맛'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음식의 맛 자체도 있지만 결국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난 일주일 동안 빵도 먹고, 밥도 먹고, 우동도 먹고.. 하루에 한 끼 이상은 배달음식으로 해결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미각을 잃었고, 저 역시 열과 기침 등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했지만 그것은 식사를 했다기보다는 약을 먹기 위한 준비를 스물한번 한 셈이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전 세계인이 2년 넘게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 '맛'을 느낄 수 없는 기억이 된 코로나19 시대..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2020년과 2021년 그리고 2022년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게 될까요. 부디 '맛있는 기억'이 많아져서 추억으로 남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