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시스 Mar 09. 2022

미얀마, 기나긴 인연의 시작

첫 쿡스토브 사업 현장 출장

2018년 새해가 밝은지 며칠 후, 미얀마로 향하는 저녁 비행기에 올라탔다. 입사 이후 두 번째 해외 출장이었다. 당시 회사에서 미얀마 쿡스토브 사업을 신규 사업으로 본격 추진하면서, 경험이 풍부한 해외 전문가들을 워크숍에 초빙해 노하우를 전수 받는 출장이 성사되었다. 신입 딱지도 떼지 못한 상황에서 생소한 국가에 가 영어로 의사소통해야 하는 자리였지만, 다행히 사수와 동행한 덕분에 이번에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지금은 군부 쿠데타와 내전이라는 비극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5년 전만 해도 미얀마는 가난하지만 민주적 개혁과 경제성장에 대한 높은 열망과 기대를 갖고 있던 국가였다. 내가 만난 미얀마 사람들 모두 정이 많고 누구보다 평화와 발전을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교착 상태에 빠진 지금의 미얀마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어 더 이상 다치거나 죽는 사람 없이 예전의 평화를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흔히 공항은 방문한 국가의 첫 인상을 결정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양곤 국제공항은 예상보다 깔끔해 놀랐다. 현대적이고 쾌적한 공항이었다. 공항 출구를 나서자마자 풍기는 습한 공기 내음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입국 심사 대기 줄을 지켜보는 미얀마 사람들


워크숍은 1일차 이론 강의, 2일차 현장 실습으로 2일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론 강의는 주로 쿡스토브 보급사업의 구조와 절차, 온실가스 감축 방법론 등을 다루었다. 앞선 글에서 자세히 서술하였듯이, 쿡스토브 보급사업은 기존에 효율이 낮고 건강에 해로운 재래식 취사방식을 고효율 혹은 청정연료를 사용하는 쿡스토브로 대체하여 탄소배출권을 확보, 판매하는 사업으로, 주로 생활 여건이 열악한 저소득 국가/지역을 대상으로 추진된다.


워크숍 현장


쿡스토브를 보급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원리는 단순하다. 쿡스토브를 사용하면 기존의 재래 방식보다 연료 사용량이 대폭 줄어든다. 쿡스토브의 뛰어난 열효율로 나무 땔감이 가진 에너지를  쿡스토브의 열효율과 쿡스토브를 사용함으로써 절감되는 나무 땔감의 양을 측정하고, 땔감이 가진 발열량, 탄소배출계수, 사업국가의 산림 훼손 수준 등을 반영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량을 산정하는 것이다. 즉 취사도구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원리는 단순하지만 나무땔감 절감량 등 수집 데이터들이 신뢰성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모니터링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지금이야 고백하건대, 당시 나는 이론 수업의 절반 밖에 따라가지 못했다. 짧은 영어도 영어지만, 강사의 인도 영어발음은 수능+토익 기반의 미국 영어에 익숙한 나에게 신세계를 선사했다. 특히 강의 중 수 차례 등장한 '따따베스'가 Database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몇 시간이 걸렸다. 영어 공부에 대한 강한 동기 부여를 받은 것도 나름의 수확이었다 (사실 인도 영어는 아직도 어렵다...).

일과의 마무리는 언제나 미얀마 맥주


워크숍 2일차는 쿡스토브가 실제로 보급된 인근 마을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쿡스토브 열효율 측정을 실습해보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양곤 중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마을이 있다고 해 도심 속 마을을 상상했으나, 눈 앞에는 아스팔트 도로도 전력 케이블도 없는 시골 마을이 나타났다. 미얀마가 UN에서 지정한 최빈국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쿡스토브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쿡스토브를 받은 10가구를 대상으로 쿡스토브 사용으로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평균 사용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 불편하거나 개선이 필요한 점이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특히 쿡스토브 상단 받침대가 작다는 불만이 자주 접수되어, 더 큰 사이즈로 변경이 가능한지 알아보기로 했다.


쿡스토브의 현장 사용율은 사업의 경제성을 좌우한다. 주민들이 보급 받은 쿡스토브를 잘, 그리고 자주 사용할수록 연료를 덜 사용해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쿡스토브를 보급한 이후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부족한 부분은 즉각 보완하는 관리체계가 중요하다.


왼쪽부터 전통취사방식, 쿡스토브 사용 현장, 쿡스토브 열효율 측정 실습


3박 4일 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자료로만 보던 쿡스토브 보급사업이 무엇인지 깊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개선사항도 많았지만, 현장에서 미얀마 주민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내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땐 알지 못했다. 앞으로 12번의 출장을 통해 미얀마 오지를 발로 뛰어다니게 될 것이라고는...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을 바꾸는 힘, 인액터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