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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시스 Aug 02. 2021

세상을 바꾸는 힘, 인액터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의 씨앗을 뿌리다

대학 시절 가장 열정을 쏟고 많은 것을 얻어간 활동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인액터스(Enactus)를 꼽을 것이다. 커리어와 직접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비즈니스를 경험하면서 삶의 방향을 잡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인액터스는 Entrepreneurial. Action. Us.의 줄임말로, 기업가 정신의 실천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목적을 가진 글로벌 연합 단체이다. 전 세계 1,730개 대학과 글로벌 유수 기업의 파트너십으로 운영되는데, 우리나라도 2020년 기준으로 31개 대학이 참여 중이며 그 규모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각 대학의 인액터스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경영 지식을 활용해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이른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출처: Enactus)

인액터스의 최대 장점은 대학생들이 사업을 직접 만들고 실행해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업 모델을 기획한 후 실제로 운영하기까지 사업의 전반적인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공모전과 같은 펀딩 기회를 통해 사업 실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업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액터스 학생들은 자연스레 사업이란 무엇인지 체득해간다.


인액터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평가할 때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Triple Bottom Line'이 있다. Triple Bottom Line이란 지속가능경영의 석학 존 엘킹턴이 1994년 주창한 개념으로,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관점에서 기업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각 요소에 대한 인액터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경제적 요소: 대상자들의 기술과 지식 향상을 도와 경제적 기회를 창출

사회적 요소: 대상자들의 삶의 질 개선, 지역사회 공헌 등

환경적 요소: 프로젝트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

연세대 인액터스의 '책it out' 프로젝트 - 헌책방과 구독 서비스를 결합한 BM (출처: 인액터스 코리아)

사업을 기획하면서 경제적 이윤 창출뿐만 아니라 환경과 사회적 측면에서 어떤 임팩트를 내는지 고민하고 실행해볼 수 있다는 건 여타 창업동아리와 구별되는 인액터스만의 매력이다. 최근 ESG(Environmental, Social, Corporate Governance)가 국내 기업 경영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가운데, 인액터스는 일찍이 학생들에게 'ESG DNA'를 심어준 셈이다. 예를 들어, 연세대 인액터의 '책it out' 프로젝트는 헌책방 주인의 큐레이팅 역량을 활용해 정기적으로 추천 헌책 패키지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로 헌책방 주인들의 월평균 수익을 30% 올렸다. 뿐만 아니라 환경 유해물질 배출이 적은 포장지를 도입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나는 인액터스에서 1년 동안 난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리사이클링 목공예 프로젝트 '우드리머'를 맡아 추진했다. 국내에 정착한 난민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 피난처와 난민들과의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사회의 편견에 막힌 채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문제를 발견했고, 난민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게끔 하는 비즈니스 솔루션을 고민한 것이 우드리머의 시작점이었다.


우리 팀은 목공예 시장의 성장세에 주목해 나무반지라는 사업 아이템을 발굴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목공예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8%를 기록했고,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나무반지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상황이었다. 나무반지는 난민들의 문화와 개성이 녹아들기 적합한 제품군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더 나아가, 목공소의 자투리 목재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이른바 순환경제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했다. 목공소에서 제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목재를 처리하는 데에도 비용이 발생하는데, 우드리머가 무료로 수거함으로써 비용이 절약되는 Win-Win 구도를 도출할 수 있었다. 또한 소각 처리되는 목재의 양을 줄여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감축하는 효과는 덤이었다. 자투리 목재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품질이 우수했고, 사이즈도 나무반지를 제작하기에 적합했다.

우드리머 비즈니스 모델

본격적인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두 차례에 공모전에 나가 1,100만 원 규모의 사업자금을 확보했다. 특히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운영하는 <청년활> 지원사업에 선정된 것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무반지 제작에 필요한 장비와 작업공간을 제공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청년활 참여자들과 교류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자금을 확보해 안정적인 사업 운영 기반을 마련한 것은 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난민들과 함께 제작한 나무반지를 축제 부스, 플리마켓 등 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해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고, 판매 수익은 사업에 참여한 난민들과 나누었다.

하지만 우드리머 프로젝트는 1년 만에 종료되었다. 지속이 어려웠던 표면적인 이유는 난민들의 저조한 관심과 참여였지만, 실은 프로젝트의 매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크게  가지 후회가 남는다.

참여 난민들의 목공예 교육을 전문업체에 위탁했어야 했다. 당시에는 목공예 사업에 대한 이해와 기술을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직접 디자인과 제작 과정에 관여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마추어에 불과했고,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나무반지를 제작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추가 비용이 지출되더라도 전문 목공소와 협업으로 우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휴학을 하고 프로젝트에 전념했어야 했다. 보통 인액터스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사업을 키우기 위해 휴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학업과 사업을 병행해 둘 다 놓치지 않겠다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사이드 프로젝트 단계에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른 뒤에는 '올인'하지 않는 이상 시장에서 경쟁해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


체계적인 재무모델과 원가관리가 필요했다. 아무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좋은 사업이라 해도 재무 관리가 엉성하다면 사업 본연의 정체성을 잊은 것이나 다름 없다. 이윤 창출은 기업 활동의 근원이며, 재무적 관점에서 수시로 사업을 검토하는 절차는 필수이다. 자투리 목재를 활용해 비용을 낮추었더라도 적절하고 합리적인 원가를 산정하는 데에 집중했어야 했고, 기업 실무자 수준은 아니더라도 경제성 분석 작업을 거쳐 미래 전략을 짰어야 했다.


지금도 수많은 후배들이 인액터스 프로젝트들이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것도 좋겠지만, 실패하더라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패 경험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무엇보다 그러한 시도가 많아질수록 보다 건강한 기업가 정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곳곳에 진출한 인액터스 알럼나이들은 기업과 사회가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는 일종의 영양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아래는 우드리머 프로젝트를 론칭하면서 작성한 일종의 출사표다. 작성한 지 5년이 지나 읽어보니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그때의 마음가짐이 떠올라 감회가 새롭다. 인액터스 후배들도 사업 기획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많은 것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저는 난민과의 커뮤니케이션 및 프로젝트 기획을 맡고 있는 ○○○입니다. 정치외교학 전공자로서 시리아 내전으로 떠오른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최근 ISIS에 의한 일련의 테러와 범죄로 인해 난민 인권 보호라는 국제규범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었고, 국경의 문은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에서 생활하는 난민들은 사회적·경제적 ‘아웃사이더’로 전락했습니다.


저는 소외된 난민들을 사회 내부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인사이더’로 만드는 것이 한국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드리머’는 난민들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구성원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프로젝트입니다. 난민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목공 기술을 익히고 자투리 목재를 재활용함으로써 자립이 가능해집니다.


자투리 목재와 난민은 서로 맞닿아있습니다. 대다수의 목공들은 쓰고 남은 목재를 버립니다. 가구나 소품으로 가공되는 목재로서 그 가치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난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피해 스스로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의 나라는 난민에게 어느 가치도 부여하지 않은 채 단순히 돌봐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난민을 원하는 사람들은 저렴한 임금과 열악한 환경으로 노동력을 구하는 공장주들뿐입니다. 자투리 목재와 난민은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우드리머는 자투리 목재와 난민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했습니다. 자투리 목재는 나무반지와 같은 공예품으로 재활용될 수 있습니다. 크기도 다양해 새로운 제품 개발의 가능성도 열려있습니다. 또 난민들은 자신의 목공 기술을 활용해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환경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우드리머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그 인식은 대략 이렇습니다. 우리도 먹고살기 바쁜데 그들을 왜 도와야 하는가? 난민 중 테러리스트가 섞여 들어올 가능성은 없는가? 이러한 우려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저성장이 고착되고 실업률은 높아져가는 시대에서,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 그것도 난민들과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너무나 낯선 장면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도전을 꿈꿉니다. 난민에게 물고기를 쥐어주기보단 낚싯대와 사용법을 알려줌으로써 난민은 단순히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닌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적인 행위자라는 사실을 증명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업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을 통해 난민과 사회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난민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이유는 난민들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난민을 본 적도, 대화해본 적도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이나 인터넷으로 접한 난민의 ‘불량스러운’ 모습을 선입견으로 받아들입니다. 결국 난민 문제가 해결되려면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합니다. 우드리머 프로젝트는 그들을 우리 사회와 잇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정우성씨는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말했습니다. “이 사회에는 도움이 필요한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 안에 난민도 있다.” 즉 난민 문제는 난민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난민도 도움이 필요한 집단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며, 특히 세계화가 진전된 이 시대가 당면한 도덕적 과제라는 것입니다. 우드리머 프로젝트는 문제의식과 행동력을 갖춘 대학생들이 모여 심은 일종의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이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씨앗을 뿌리는 과수로 성장하듯이, 난민들이 우드리머를 통해 자립하고 다른 난민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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