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시스 Feb 28. 2021

갑자기 인도 출장 (하편)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 국제포럼

파란만장했던 해외출장의 첫날이 지나 뉴델리의 스모키한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출장의 목적지인 Clean Cooking Forum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Clean Cooking Forum은 Clean Cooking Alliance에서 2년마다 개최하는 국제 컨퍼런스다. 문자 그대로,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깨끗한 취사(事)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교류의 장이다. 행사를 개최하는 Clean Cooking Alliance는 2010년 유엔재단(United Nations Foundation)의 주도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전 세계의 깨끗한 취사 환경 조성을 위한 연구, 홍보, 교류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행사가 열린 Indian Habitat Centre

Clean Cooking이라는 개념이 다소 생소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주제다. 전 세계 약 30억 인구는 취사를 위한 불을 피울 때 나무땔감과 숯 등을 사용한다. 문제는 대다수가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불을 피워 상당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고, 또 연료가 타면서 내뿜는 미세먼지, 일산화탄소와 같은 오염물질이 다량 배출된다는 것이다. Clean Cooking Alliance는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청정 연료나 고효율 쿡스토브와 같은 솔루션을 전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포럼은 2박 3일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었고 Clean Cooking과 관련한 세미나와 네트워킹 시간이 주를 이루었다. 참석 인원은 대략 500명쯤 되어 보였고, 출신 국가도 가지각색이었다. 개도국의 Clean Cooking을 이야기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였다는 사실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지금이야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뿐만 아니라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사업으로 잘 알려졌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그다지 활발한 의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 평균 도시가스 보급률이 87%에 달할 정도로 도시가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산간오지가 아니고서야 나무땔감으로 불을 피우는 부엌을 볼 기회도 없으니 Clean Cooking의 필요성을 체감하기 어려운 환경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땅 위의 누군가에겐 여전히 생존이 달린 문제이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바로 이번 포럼이었다.

포럼 첫날, 다양한 배경의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나도 저기 어딘가에...

Clean Cooking이라는 공통의 미션 아래 논의된 주제도 다양했다. 효율적이고 깨끗하게 불을 피우는 쿡스토브, 바이오에탄올과 같은 청정 연료 공급부터 Clean Cooking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국제기구와 금융계의 역할 등 저마다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포럼의 참석자들과 비교하면 나와 본부장님은 이른바 "뉴비"였다. 수년 수십 년 앞서 그 분야를 경험한 전 세계의 선배들에게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세미나를 듣고 명함을 건네며 우리의 존재를 알렸다.


물론 듣고 배우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우리와 이미 협력 관계를 맺은 파트너뿐만 아니라 새로운 파트너십을 원하는 업체들과의 미팅도 포럼 중간중간에 이어졌다.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의 농촌 진역에서 쿡스토브나 정수기, 가정용 태양광 등을 보급, 판매하는 업체들이었다. 이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활성화된 탄소배출권 연계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여 투자를 유치, 사업 규모를 확장하려는 니즈를 갖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해외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통한 배출권 확보를 가능케 하는 제도가 마련되면서, 우리가 가진 탄소배출권 역량을 발휘하여 그들의 니즈에 대응할 수 있는 분야였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본부장님의 역량이었지만... 여하튼 우리나라의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고, 식사시간까지 쪼개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며 국내외 동향과 협업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럼 시작 전, 본부장님이 내게 한 가지 주문한 것이 있었다. 비록 경험이 부족한 인턴일지라도 여기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있어 보이는 척 "연기"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해외출장, 네트워킹 등 모든 게 처음이었던 당시의 나에게는 외국인을 만나는 일조차 버거웠지만, 그때 본부장님의 주문은 이후 내 업무 태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 연차임에도 클라이언트와 직접 소통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들 앞에서 전문가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연기를 하다 보니 업무 지식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소통 방식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득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그 순간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습관은 실전에서도 의외로 효과적이었다.


인생의 첫 해외출장이라는 점에서도 내게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혔다는 점에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갑자기 인도 출장 (상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