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숲 Mar 15. 2023

7. 백반증에 대하여.

  며칠 전에는 문뜩 백반증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제 등에는 꽤 넓은 크기의 백반이 있어요. 위치도 위치 거니 와, 타고난 피부가 흰 탓에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백반입니다.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이 희여멀건한 자국 때문에 나를 병원에 계속 데리고 다녔습니다.


  먼 도시 대학 병원의 긴 복도가 기억납니다. 마치 오래된 필름 사진처럼 세피아 색으로 색이 바랜 복도였어요. 몇 달을 기다려 진료를 보고, 어린 나는 멀뚱히 엄마와 의사선생님을 번갈아 올려다보고, 결국은 '원인 미상의 백반증'이라는 병명을 진단을 받았던 기억. 어렸을 때 엄마한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 왜 자꾸 신경 써. 나도 눈에 안 보이고 이거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치료 안 해도 될 것 같아. 그때 엄마는 그래도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언젠가 등이 보이는 옷을 입고,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할 때 신경이 쓰일 거라고.


  결국 백반증은 치료되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연고를 내내 발랐지만 내 등은 여전히 색이 빠져있었어요.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나는 오래도록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한 4년 전인가, 제 몸에 이상하리만큼 점이 많이 생길 무렵, 대학병원에 가서 모양의 양상이 좋지 않은 몇 개의 점들을 채취해 검사를 한 적이 있어요. 흑색종의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점을 도려내는 시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 엄마는 내가 까맣게 잊고 지냈던 백반증에 대해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애가 등 뒤에 백반증이 있는데, 이건 어떻게 치료하는 게 좋으냐고.


  선생님은 가만히 제 등을 보더니 '이건 동양인한테서 보단 서양인한테서 많이 보이는 피부인데, 특이하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 아니기에 미관상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치료는 불요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증상 완화를 원하신다면, 최근에 새로 나온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 볼 수는 있다고도 덧붙였고요.


  엄마가 나를 위해 쏟은 시간들이 문뜩 기억났습니다. 정말 오래 잊고 지냈는데. 남자친구조차 알지 못하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이 백반증이 뭐라고, 엄마는 아주 오랜 시간 그것을 마음에 품고 신경 쓰고 계셨던 거에요.


  그날 엄마는 의사 선생님이 처방한 스테로이드 연고를 내 등에 발라주셨습니다. 유달리 질척질척한 그 연고를, 엄마는 내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펴 발랐습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내 백반을, 스무 몇 년이 지나도록 내내 기억하고 있는 게. 내게 조금의 흠결이라도 될까 싶어 노심초사하며 의사에게 묻는 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확실치도 않은 이 연고를 시간 들여 등에 펴 발라주는 게.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뭘까.


  그날 이후 이따금 내 등의 백반증을 들여다봅니다. 이게 엄마가 내게 보여준 사랑의 흔적이라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엄마와 나만의.

작가의 이전글 6. 사진을 찍지 않는 일상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