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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 Jan 15. 2023

나다움을 추구하는 이유

1월 중간점검

내가 언제 이렇게 의식적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별 고민 없이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들에 몰두했던 적이 있었나. 예전에는 내가 선택한 방향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괜히 삽질할까봐, 노력하기도 전에 헛된 노력일까봐 주저한 적이 더 많았다.


지금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분명하게 알고,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정답은 없고 사람의 생각은 계속 변하니까. 그래도 이 시점에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다. 그래서 나의 선택의 기준이 요즘에는 비교적 명확하다 느끼고 그래서 작은 실패에도 좀 더 여유로워졌다. 어차피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으니까.






작년 초 디자인팀 리더와 했던 면담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회사에서 더 오래 일할 것 같아요?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라 당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으로 단순하게 답변했는데, 첫 번째 질문에는 나의 매니저 추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두 번째 질문에는 미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 다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 다시 정리한 나만의 답변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목표 상위에 나답게 살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무언가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 영향력 있는 직업인이 되는 것, 일과 관련한 사람들과 네트워킹 하는 것 모두 나다운 일이다. 구매하고 창작하고 선택하고 시간을 쏟는 모든 것이 삶에서의 디자인인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상황에 따라서 나다운 일이 꼭 디자이너로 일하지 않는 게 될 수도 있다.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디자인을 좋아하니까, 일을 즐길 줄 아는 유능하고 감각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이 회사에서 디자인을 하는 게 나답게 산다는 상위 목표를 지지할 수 있어야 더 오래 일할 것 같다. 늘 새로움 추구하기, 정당한 대우받기, 재미있게 일하기, 가보지 않은 곳 가보기,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 만나기, 더 성장하기 등. 나답게 사는 삶의 축에 디자인이 얹어진 것, 언제든 그만둘 수도 이어나갈 수도 있는 게 디자인이라면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니는 게 직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한다. 지금의 회사를 1년 하고 1개월 다닌 시점에 나의 마음은 우리 회사에 꽤나 만족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일, 근무환경으로 바뀐 라이프스타일, 조직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을 받아 내가 나인 게 점점 더 좋아졌다.


디자이너로서의 성장보다 중요한 건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다. 언제까지 디자이너로 일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 인간으로서 발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왜 나다움을 정의하고 싶어 할까?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꽤 흔한 이름이었던 ‘이유진’이었을 때부터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 짓고 싶어 했다. 미술을 선택한 것도 일반 과목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창의성, 고유함을 드러내고 구별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림을 공장처럼 찍어내게 만드는 입시미술을 싫어했다.) 성인이 될 때 까지도 어떤 이름으로 바꿀지 고민하다가 나중에 봐도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섰을 때 이름을 이홍유진으로 개명했다. 원래 이름에 엄마 성 ‘홍’을 더해 남녀가 평등한 권리를 갖는 삶, 그리고 구별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잠시 자란 영향도 적지 않다. 초등학생 때 2년 간 베트남에 살았고 이후 22살에는 스웨덴에 교환학생으로 반년 조금 넘게 다녀왔다. 다른 나라에서 제2 시민으로 산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결과적으로 나의 안녕과 존립을 위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How Living Abroad Helps You Develop a Clearer Sense of Self 에서도 외국에서의 거주 경험이 정체성 확립에 주는 영향에 대한 글을 읽어볼 수 있다.



나다움을 정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려온 궤적, 추구해 온 삶의 방식에는 취향과 필요가 교차하며 가느다란 연속성을 만들어왔다. 내가 즐거워하는 것, 시간을 보내는 방식,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나의 성향, 자라온 환경으로부터 받은 영향, 친구들의 성향까지도.


동경했던 것들이 이제 나의 일상이 되어있기도 했고, 그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골라내 전면적으로 공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운동을 이제는 나의 삶의 일부로 5년째 함께하는 것, 좋지 않은 식습관과 언어습관을 바로잡은 것 등. 다행히 원래도 버리는 것을 잘해서 싫다고 생각한 것들에 미련이 없어 고치기가 쉬웠다.




한 해의 목표를 세우고 맞이한 지난 2주


여러 커뮤니티, 모임에 참석하려고 시도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만큼 내 세상이 넓어질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열심히 사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을 더 많이 찾고 싶다.


서울에 가는 날을 줄이고 내 생활을 최적화했다. 12월 마지막 주에 했던 방 정리와 디지털 정리가 여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나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 첫인상이 어떤지 물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외모는 어려 보이지만 나의 분위기나 목소리, 눈빛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외향적이고 시원시원하다고 했고. 그리고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결혼중매서비스) 듀오 모델 같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다 나온 이야기인가 하면, 평소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멀끔하고 훤칠하며 따뜻한 사람의 이미지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연예인으로 이야기하면 외모가 특정되는 오해가 있을까 봐 지하철 전광판에 붙은 듀오 모델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다니! 이상형을 만나고 싶다면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듯, 언젠가 이상형을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평생 나와 함께할 사람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어쩌면 과몰입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나에 대해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고, 개선하고, 실험해 보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를 알고 세상을 알면 백전백승은 아니어도 심심치 않은 성공을 노려볼 수 있으리라 믿으며 나에 대한 기록을 이어 나가보려 한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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