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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Feb 11. 2024

명절에도 우리는

사람 살리는 데는 휴일이 없다.

2024년 2월 8일 목요일의 퇴근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다. 동료 선생님들은 집에 가져갈 선물을 한 보따리씩 손에 들고서 사무실 문을 나섰다. 올해 설날 연휴는 4일이고 휴가를 쓰면 좀 더 길게 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연휴기간 내내 당직근무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멀리 이동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심장이식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지만, 당직일 때는 장기이식 수술을 위한 출장이 생길 경우 장기 적출의료진과 함께 한 팀으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에게 다음에 보러 가겠다고 말하며, 병원 주변에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울 요량이었다.


그러던 중 기증자가 계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역이 각각 다른 두 곳에서 장기기증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 곳은 내가 일하는 병원과 가까웠고, 한 곳은 기차 혹은 구급차를 타고 가야 했다. 그날 확실히 결정된 건 내가 담당하고 있는 심장 수술은 없었고, 비교적 가까운 곳에 계신 기증자로부터 본원 대기자가 간장을 수혜 받기로 결정되었다. 나는 내일 동선과 일정 조율 등 머릿속에 계획을 세워 놓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7시,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rea Network for Organ Sharing, KONOS)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현재 먼저 심장이식을 받기로 예정되었던 기관에서 금일 오전 보호자와 면담 후 최종 수혜여부를 결정할 예정인데 거절할 가능성이 있어서 혹시 기회가 오면 본원 심장이식대기자가 수술 진행이 가능한 지 확인하는 연락이었다. 적출 수술은 금일 오후 예정되어 있었는데 수술 전 준비, 혈액검사, 수술 가능한 의료진이 있는지 등 챙겨야 할 것들이 있어서 심장이식팀과 상의한 후 알리기로 했다.


명절이라 각자 고향에 내려가고, 일정이 있을 텐데도 심장이식팀 교수님들께서는 기회가 오면 한번 진행해 보자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수술 전 거부반응을 예측하기 위해 혈액을 섞어보는 검사를 위한 검체를 확보하기 위해서 기증자관리기관에 연락하고 구급차를 배차했다. 연휴기간 검사를 담당하시는 임상병리사 선생님과, 환자를 담당하고 계신 당직 의사 선생님, 환자가 입원하고 있는 병동 간호사선생님께도 환자 검체 확보를 위한 처방 및 채혈을 부탁드리기 위해 연락했다. 수술 전 혈액검사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한 후 연락을 기다렸다.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본원 심장이식대기자분께 기회가 왔음을 연락받았다. 곧바로 심장이식팀에 사실을 알렸고, 심장 적출 의료진 중 한 분께서는 어제 밀린 일을 마치고 저녁 늦게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금일 수술을 위해서 급히 아침에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좀 막히긴 했지만 기차표가 없어서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동시에 폐이식 공지방에 새로운 소식이 올라왔는데 마찬가지로 원래 수혜 받기로 했었던 기관에서 거절하여 본원 폐이식대기자분께 기회가 온 상황이었다. 위치는 기차 혹은 구급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마침 폐이식을 담당하고 있는 코디네이터선생님께로부터 메시지가 왔는데 확인해 보니 기차표는 모두 매진이었고, 구급차로 예상 시간을 검색해 보니 5시간 36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원래 그 정도까지 걸리는 거리가 아닌데, 명절이라 교통체증이 심했다. 적출 수술은 이른 오후였는데 구급차를 타고 지금 출발해도 수술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KONOS와 KTX가 장기이송과 관련된 협약을 했다는 소식이 떠올랐고, 좌석이 매진일 때 장기이식 의료진임을 증명하면 입석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구급차로 이동할 생각을 하다가 KTX로 2시간 조금 넘게 이동할 수 있게 되니 감사했다. 그리고 장기이송을 1초라도 빨리 할수록 수혜 받는 분의 상태도 좋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기뻤다. 기증자의 뜻을 잘 이뤄드린다는 것은 결국 수혜자가 공여받은 장기를 잘 관리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기에.


KONOS에 연락하여 입석을 타기 위한 공문 처리를 완료한 후, 폐 적출 의료진에게 연락했다. 적출의 에게 연락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아빠 나랑 오늘 계속 놀 수 있는 거 맞지?'라는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적출의 선생님은 순간 난처해했지만 아이와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최대한 빨리 기차 시간 맞춰서 이동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폐이식 팀과 함께 출장길에 나섰다.


수술실에 들러 폐 구득을 위한 물품을 챙긴 후 구급차로 향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고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사이로 아이스박스와 수술 물품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서 기차를 타러 갔다. 명절이라 그런지 기차 안은 사람들의 짐으로 가득 찼다. 그래도 입석이라도 탈 수 있는 게 감사했다.

입석이라도 탈 수 있게되어 감사했던 날


적출을 함께 간 의사 선생님은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며 머리도 못 감고 나오셨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속상함을 비치셨지만, 마침 오늘 수혜 받으시는 환자분께서 상당히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으셨던 분이었기에 오늘 폐이식수술을 받으실 수 있게 되어 다행으로 여기셨다. 한 집안의 남편 그리고 아빠로서도, 흉부외과 의사로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선생님의 모습이 괜스레 멋져 보였다. 나중에 아이도 시간이 흘러 아빠의 상황을 이해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아주 멋지고 훌륭한 아빠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기증자가 계신 수술실에 도착해서 묵념한 후 장기 상태를 확인하고 다른 병원 팀에서 수술을 하시는 동안 잠깐 시간이 났다. 다들 밥도 못 먹고 달려왔기에 병원 근처 식당을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명절이었기에 열고 있는 음식점이 없었고 골목으로 들어간 순간 너무나 반가운 간판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김밥나라.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김밥과 떡볶이, 제육덮밥 등 여러 음식을 시켜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욱여넣고 다시 수술실로 향했다.


폐를 구득하고 나서 기차역으로 향했는데 다행히 서울로 올라가는 KTX 기차 편이 있었다. 좌석에 앉아서 눈을 붙이고 떠보니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명절에도 우리는 기증자 분의 숭고한 뜻이 생명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게끔, 장기가 들어있는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병원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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