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저자 유성호교수님의 이식학회 강연
장기이식코디네이터로서 심장이식을 전담하고 있는 나는 주로 대한이식학회와 대한심부전학회 주관 행사에 참석한다. 두 학회 모두 대한민국의 이식현황뿐만 아니라 질환 치료와 돌봄에 대한 최신지견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하다. 이번에는 대한이식학회 춘계학술대회가 개최되어 참석했다. 학회장에 도착해서 프로그램을 보는데 평소와는 다른 성격의 강연 일정이 오후에 잡혀 있었다.
그 강연은 바로 법의학자이자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의 저자이신 유성호교수님의 강연이었는데 주제는 '생명 나눔/뇌사자 발굴의 과정'이었다.
매주 부검을 하는 법의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장기기증과 이식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먼저 제출하신 초록을 읽어보았다. 천천히 문장을 읽어나갔는데 아마도 내가 만나본 의사 선생님 중에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과 깊이가 가장 남다른 분이라는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강연이 끝난 후 나는 직감이 맞았음을 깨닫게 됐다.
강연 중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막 대학에 입학해서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쓰러진 채 발견된 학생의 부검 의뢰가 들어와서 추적을 하던 중 평범하지 않은 상처가 보였다고 했다. 부검을 해보니 희귀병에서 나타나는 소견이었다고 한다. 그동안의 의사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아마 학생도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가족들의 말로는 수험생 시절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희귀병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당시 부모님에게만 기대여명을 설명했다고 했으나 아마 자녀였던 학생도 자신이 얼마만큼 더 살 수 있는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어서 검색하면 안 나오는 게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학생은 평소에 신촌에 있는 연세대학교에 가서 아카라카 응원단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바랬던 연세대학교는 가지 못했지만 신촌에 있는 다른 유명한 대학에 진학했고 기뻐하며 신입생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알고 있었던 죽음에 직면하게 됐다.
나는 강연을 듣다가 자신의 끝이 언젠지 알고 있는 사람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보겠다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을 학생의 간절한 마음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당장 내일 일도 알지 못하면서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 걱정, 염려하며 보내는 게 대부분 사람들이 처한 현실 아닌가. 일그러진 시대상에 학생이 품고 이뤄냈던 간절함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죽음은 생명체로서의 의미에 더하여 주변과 맺고 있는 관계의 영원한 단절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과 죽음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아름답게 승화할 수 있을까요? 톨스토이가 언급하였듯이 우리의 삶은 오직 타인과의 관계와 사랑을 통해 그 영원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원한 삶의 길 중 하나는 장기기증입니다. (중략) 나의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이 피어날 수 있다면 아마도 죽음을 뛰어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도움을 주는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죽음을 뛰어넘는 삶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숭고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 초록 중에서 발췌한 글
유성호교수님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일의 의미를 상기시켜 줬고, 지친 마음에 큰 위로를 주었다. 삶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숭고한 일에 나는 조금 더 몰두해보려 한다. 그리고 내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며 하는 일과 사랑을 통해 마주치는 모든 분들께 내 역할과 존재가 큰 위로가 되고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참 기쁘고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실패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절대로 뒤돌아 보지 마시고 한 발짝 한 발짝 뚜벅뚜벅 걸어가세요. 마지막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보통 다들 후회하세요.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산 인생이다라고 생각이 들려면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의미를 찾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너무도 중요하고 숭고한 일을 통해 켜켜이 사랑을 쌓아나가고 있는 여러분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 유성호교수님께서 강연을 마치며 해주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