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문 Jul 22. 2022

한부모에요

감기처럼 지나가는 

학교 일로 다른 학년 학부모를 만날 일이 있었다.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들 얘기, 제주도로 이주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주민들은 언제 어떻게 왔는지를 인사처럼 묻곤 한다. 그녀는 얼버무리듯 원래 살던 집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와 아빠랑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어떤 사정일지 직감한다. 사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부모예요.”라고 수줍게 건네는 그녀의 마스크 위로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녀의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묻지도 않은 한 부모가 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최대한 오래 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상대와 나의 관계가 모호한 시점에 굳이 이야기를 꺼낼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그녀는 수줍음은 또 다른 용기의 얼굴이었다. 한 부모가 아니라도 제주로 이주한다는 것은 제주도와 육지와의 거리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살던 곳을 떠날 때는 엄청난 결의가 필요하다. 가서 뭐 해 먹고 살지? 아이들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이길 만큼의 끌림으로 제주로 온다.     


제주는 아름답지만 누구에게나 아름답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거주비나 생활비가 육지보다 비싸다. 살아가는 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각자 다를 테니 누군가에게는 천국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곳일 수도 있다.     


살던 곳을 떠나 아이들만 데리고 연고도 없는 제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의 고민과 고생을 했을지 나의 경험으로 감히 미루어 짐작해본다.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을 통해 만나게 될 때 연대의 중요성을 느낀다. 그녀를 그냥 조용히 안아주고 싶은 마음 그것은 나를 안아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나 나는 이혼 후 아이들의 친권자, 양육자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자신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그것은 내 가정을 지키는 일이었고 아이들은 면접권을 통해 아빠를 만나게 된다. 면접권을 실천하는 의지는 전적으로 전남편에게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구나 이혼 할 수 있고 아픈 일을 겪는다. 그것은 나의 잘못도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다. 아픈 과정을 겪고 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 단지 아픔과 상처로만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살펴서 지켜보는 아이들에게 삶을 가꾸어 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만 겪었을 것만 같은 상처도 알고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걸리는 감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바다의 시간이 담긴 비닐봉투 속 물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