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문 Sep 17. 2021

혼자서도 할 만해

감당할 만한 삶의 무게

  제주로 이사 온 지 얼마나 지난 건가 손가락을 꼽아보니 이제 5개월이 지났다. 체감으로는 5년도 더 된 것 같고 제주사람이 서울에 살다 귀향한 것처럼 너무나 능청맞게 살아가고 있다. 여름방학이 되니 육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놀러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주로 엄마와 아이들만 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우리 게스트하우스의 콘셉트이기도 하다. 엄마와 아이 여행 숙소. 지난 시절 내 여행의 이유는 현재를 버틸만한 이유 찾기였다. 언제나 아들과 딸을 데리고 답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많이 다니다 보니 엄마와 아이만의 여행에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제주로 와서 둘째인 일곱살 딸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좀처럼 재밌어하지를 않았다. 4개월쯤 가다 말다 반복하다 날이 더워질 무렵부터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친구를 무척 찾았는데 양평에서 단짝이었던 친구를 특히 그리워했다. 마침 친구네가 초대에 응해줬고 9월 초에 여행을 오기로 했다. 아이도 나도 무척 기다리고 있었다. 딸을 위해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할 수 있는 상황에 스스로 위안을 받았다. 딸의 친구 Y는 4개월 된 동생이 있다. 아빠와 엄마 어린 동생과 Y, 네 가족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Y 아빠는 다정하다기보다는 쿨한 아빠였다. 딸을 아이 취급하기보다는 친구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 Y 엄마는 어린아이를 돌보느라 거의 아이와 함께 있었다. 두 친구에게 빈방 하나를 주었더니 종일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꼭 붙어서 놀았다. 가끔 신경전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이들의 놀이 같았다. Y네는 제주의 자연을 좋아했다. 유명 관광지보다 숲이나 바다를 보고 싶어 했다. Y네 가족과 나,열살아들,딸은 비자림을 함께 가기로 했다. 흐릿하고 비가 오락가락하였는데 막 쏟아지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흐리고 어둑한 비자림은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유유자적 절반쯤 걸어왔을 때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숲이 지붕처럼 우거진 곳이라 딱히 걱정 안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는데 제주는 제주였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고 며칠 동안 머금었던 것을 한 번에 쏟아낼 기세였다. 모두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가운데 아이들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Y엄마는 어린동생을 품에 꼭 안고 먼저 서둘러 걸어갔고 Y는 아빠가 달래면서 데리고 왔다. 나도 아들,딸 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달래 가며 부지런히 걸었다. 딸아이가 비 맞는 게 싫다면서 점점 목소리를 높였고 빗방울도 점점 굵어졌다. 뒤에서도 힘들어하는 Y 목소리가 들려서 흠짓 돌아보니 이미 Y는 아빠가 안아서 걷고 있었다. 딸아이가 친구 모습을 못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들었다. 보면 부러워하지 않을까. Y는 괜찮은데 내가 부러운 걸까. Y를 업어주고 싶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덜 미안할 거 같았다. 에게 업어줄 수 있다고 하니 그럼 엄마도 힘들다고 그냥 걸어가겠다고 했다. 조금 전만 해도 툴툴 거리는 일곱 살이었는데 괜찮다고 걸어가 보겠다고 하니 저런 마음이 어떻게 생겼을까 싶어서 고마웠다.




아들이 유아시절 다니던 숲유치원에서 비가 오는 날 커다란 잎을 따서 우산 삼아 다니곤 했던 기억이 났다. 비를 가릴만한 적당한 크기의 잎을 찾으며 부지런히 걸었다. 곧 커다란 잎이 서너 개 붙어있는 식물을 발견했고 여러 개 따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아이의 기특한 마음에 주는 선물이었다. 기분 좋게 하나씩 나누어 들고 놀이 삼아 비를 가렸다. 그런데 조금씩 가렵기 시작했다. 아이도 나도 팔이 여기저기 따끔거렸다. 가려움이 심상치가 않았다.

가려움이 가장 심했던 아이의 짜증이 순간 폭발했다. 평소에 모기 물림에도 힘들어하는 아이인데 온몸에 뭐가 퍼진 듯 정신없이 긁어대기 시작했다. 아무 대책도 없는 상황이라 일단 아이를 업고 최대한 빨리 걸었다. 그날따라 풀어헤친 나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물방울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나뭇잎을 잠깐이라도 만졌던 오빠와 Y까지 가려워했다. 내가 뭔가 단단히 잘못을 한 거 같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등에 업힌 아이는 7세가 할 수 있는 가장 원망스러운 표현을 몸부림과 함께 쏟아냈다. 등에서 몸부림이 심하니 걷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내 등까지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 온몸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어른인 내가 이 정도인데 아이는 오죽했을까. 그래도 몸부림은 좀 힘들었고 아이가 무슨 말을 해도 담아두지 말자 생각했다. 그냥 입을 꾹 다물고 걷는 내 발끝만 쳐다보았다. 걱정이 된 Y 아빠가 119를 부르자고 했고 관리사무소에 도착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관리사무소에 계신 분은 어떤 것을 만졌냐고 물어보셨다. 잎의 모양을 설명했더니 천남성 잎인 것 같다고 사약으로 쓰이는 독초인데 그걸 왜 만졌냐는 얘기를 하셨고 독초, 사약 이런 이야기에 아이는 더 자지러졌다. 딸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벌레 물린데 바르는 약과 119를 부탁했다. 아이는 병원 가는 것이 무섭다며 오히려 겁을 먹었다. 그때 다른 관계자분이 오셔서 물파스를 뿌리고 아이를 씻기면 괜찮을 거라고 걱정스럽지 않게 말씀해주셨고 직원 화장실로 안내해주셨다. 아이를 벗기고 한참을 물로 씻겼다. 왜 나를 힘들게 했냐는 아이의 원망에 미안하다고 엄마가 몰랐다고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가렵지만 동생의 몸부림에 참았던 아들이 

"엄마 저도 가려워요"

 라고 엄마가 봐주기를 많이 기다렸다는 듯 팔을 내밀었다.

'그래 너도 있었지 너도 비 맞고 힘들게 참으며 걸어왔지. 동생 업느라 손도 못 잡아주고 부지런히 엄마를 따라왔지.'

마음속에 다시 한번 빗줄기가 지나간다. 샤워기 물줄기에 아이의 가려움과 두려움이 씻겨 나가는 듯했다. 그 사이 119는 도착했고 병원에 가게 되면 알레르기 주사를 맞게 될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천남성 잎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다고 하셨다. 씻고 나니 가려운 증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나아진 듯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가 119에서 오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고맙게도 Y아빠가 아이에게 호흡을 시키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셨다. 아이는 차에 타서는 울먹거리며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다면서 아까 엄마에게 심하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너무 가려워서 무서웠다고 했다. 운전을 안 해도 된다면 꼭 안아서 집까지 가고 싶었다.




아이를 챙기는 아빠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내가 자랄 때도 그랬고 아이를 낳고도 그런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의 남편의 조건 중에는 자상함이 1번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이 없는 사람과 아이를 낳았다. 내가 꿈꾸던 남편은 없었다. 꿈을 하도 꾸다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빠져나가고 우리 셋이 되었을 때 자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가도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의 손을 움켜 잡을 때도 느닷없이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무게감에 한 번씩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금세 눈물을 닦았다. 청승 떨며 살려고 이혼을 택한 것은 아니기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갈지 알 수 없다. 때때로 어른이 한 명뿐이라 아이 둘을 챙길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기지만 그게 우리의 삶이라면 우리의 방식대로 적응하기로 했다. 어른이 한 명인 가정의 아이로 키우자고.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내가 잘 살면 아이들은 잘 큰다 는 주문만 걸기로 했다. 나만 잘하자 열심히 살자 그 마음만 가지고 아이들과 살아간다. 힘들 때 번쩍 안아줄 힘센 남자는 없지만 힘들어도 참아보려는 아이들이 있다. 놀랐을 때 진정시켜주는 다른 어른은 없지만 끝까지 지켜보고 안아주는 내가 있다. 모든 것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들이다. 그래서 내게 온것은 아닐까. 생각보다 꽤 할만하다.

#이혼#싱글맘#비자림

작가의 이전글 국영수 보다 결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