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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fromsomewhere Jul 05. 2022

킬링타임에 대한 고찰

요즘 블로그를 운영 중이어서 영화를 많이 찾아보게 된다. 그건 변명이고 넘쳐나버린 시간 탓이 크다.

나도 블로그를 통해서 추천받는데 종종 거슬리는 단어가 보이곤 하는데, 그건 바로 킬링타임용 무비라는 것이다. 아니 이건 재미있는 것도 노잼인 것도 아닌 그 어딘가에 있는 애매한 그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미적지근한 무비라 하지 않고 이렇게 잔인한 표현을 하는지 불편함이 앞선다

재벌 이재용과 내가 가진 것 중에 그나마 제일 공평한 게 하루 24시간이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면 그 소중한 시간을 죽여버린다는 말인데 참 거슬린다. 나도 이재용처럼 1분씩 쪼개 가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걸 죽이라는 죄를 저지르라는 말인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흑염룡이 꿈틀거린다.


내 흑염룡을 잠재우며 가만히 상념에 빠져보니 배배 꼬여버린 내 발상으로 이것마저 그냥 넘기지 못하는 나는 정말 예민한 현대인인가?


사라지다는 글감을 보면서 떠올렸던 게 바로 킬링타임 무비였지만 나는 오늘 이 순간을 나에게서 앗아간 시간 말고도 인생을 살면서 떠나보냈던 것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몇 번의 사랑이 나에게 왔다 가버렸다. 처음엔 걔 잘못 다음엔 내 잘못, 걔 실수 이후에 내 실수 또 내탓 얼마전에 종료된 나의 연애는 나와 걔가 서로에게 잘못하고 질질 끌었다.


서로 맞지않는 사람인 걸 알면서도 우린 결혼 적령기에 만났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억지로 끌고 가다 서로를 서로에게서 놓치게 되었다.


몇 번의 꿈과 기회가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중학교 때 이상하게 멋있어 보여서 되고 싶었던 재즈 뮤지션, 대학교 때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혹은 평범한 나의 크리에이티브로 함을 펼쳐 보이려 목표로 삼았던 PD, 직장을 관두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무언가를 남기는 여행가를 꿈꿔왔었는데 이건 유튜버 빠니보틀한테 영광을 넘겨주게 되었지.


모두 다 시도해 보려고 주춤거리다 세월이라는 큰 파도 앞에 삼켜져 버렸다.


이 몇 번의 사라짐을 보니 보니 진짜 난 아무것도 제대로 한게 없지 않은가?


또 다시 우울감에 빠지려 하던 순간 갑자기 불현듯 무언가 스치듯이 무언가가 떠올랐는데 가만 보니 반대로 그때 그 시절 그 여자를 열렬히 추앙했던 내가 있었고, 꿈꾸며 행복해하던 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잃어버린 건 어쩌면 몇 번의 연애와 몇 번의 목표가 아니라 그때의 나에게서 나쁜 것만 남겨 두고 좋은 것을 내버려 버린 자신이 아닐까라는 걸..


연애의 초반에는 항상 불타올랐었고 설렘이 있었다. 이후에는 사랑을 잃어버릴까 걱정도 앞섰지만 그녀가 옆에 있음에 안정감도 느꼈으며 처음으로 세상이 가득 찼던 기분도 느끼게 해주었다.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 온갖 재즈뮤직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게 되어서 내 친구는 듣고 싶은 음악이 있을 때마다 꼭 나에게 물어본다. 내가 엄청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나 뭐라나 하는 말이 내 어깨를 조금은 올려준다. 


PD를 꿈꾸면서 연기 동호회도 들어가 보고 개발새발 글도 많이 쓰게 되었는데 이건 내 인생의 자양분 같은 것으로 남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은 알고 보면 새로운 사람, 환경을 즐기는 적응력으로 나를 더 내실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 마음속에 찌꺼기처럼 남겨져 버린 미련한 나, 실패한 나를 놓아버리자는 생각을 했다.

과거의 설렜던 나, 희망 가득 한 나만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도 나는 수없이 많이 경험하고 느껴볼 것이다. 단맛, 쓴맛, 신맛, 모든 맛을 다 맛보고 그다음에 소중한 것을 내 가슴속 깊이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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