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근길 지옥철이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휴대폰만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도 자리를 잡아 유투브를 보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냥저냥한 하루가 되길 기원하며, 빨리 저녁이 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이번 하차하실 역은 강남역, 강남역 입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나는 무거운 발을 옮기고 있었다. 빼곡히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출근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걸어갈지 버스를 다시 갈아타고 갈지 고민하던 와중에 민향이 코끝을 스쳤다. 나를 지나치는 그 여자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나고 있었다. 문득 그녀일까 생각이 들어 그 여자를 지나치는 척 하며 고개를 슥 돌려 얼굴을 확인했다. “아 다행이다. 그녀가 아니다.” 예쁘장한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쓰는 샴푸가 있었다. 나 에게도 써보라 권했던 일본 샴푸 향이 그 여자에게서 나에게로 자꾸 스며들었다.
이상하다. 입에서 맛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 어제 시판하던 약을 먹었었는데 이제 효력이 나타나는 건가? 이름이 ES-1이었나?”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신약이 하나 개발되었다. 냄새만 맡아도 맛이 느껴지고 배가 부른 느낌까지 가질 수 있는 약 말이다. 다이어트 보조제인 이 약을 어제 퇴근길에 프모로션 행사로 약을 한알씩 주었는데 이제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희한하게도 민트맛이 느껴지고 공복인 나에게 살짝의 간식거리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나는 이 약이 세상을 바꿀꺼라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알약의 출시와 뉴스에는 대서특필이되었고 이 약을 개발한 제약사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 주식을 가지고 있던 초기 투자자들은 억만장자가 되어 한강뷰의 아파트에서 배당금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식단도 하며 이 약에 효과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다이어트에 성공해 비만율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알약의 개발자는 한국 최초 노벨상 후보자가 되었고 알약의 광고모델은 예능에도 출연해서 인기를 쌓아갔다. 내 개인적인 삶도 매우 편리 해졌다.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맡으며 살은 빠지고 배는 불렀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짙은 법이었다. 음식장사를 하는 자영업자와 헬스장들은 하나 둘 망하기 시작했고, 그 틈을 대기업들은 잔인하게도 파고들었다. 망한 가게를 저가에 매수하여 향기판매식당으로 업종을 기가 막히게 변화시켜 그들의 배를 불려갔다. 광화문에는 전국 자영업자 단체가 시위를 시작했고 어떤 한 모델은 약을 과다복용하여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나는 점점 더 게을러졌고 알약이 없으면 하루도 살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제 향에 예민해져서 길을 다닐 때는 마스크대신 코마개를 하고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밀이나 쌀의 소비가 줄어들어 1차산업도 점차 시들어져 갔고, 축산업도 전례 없는 불황을 맞이했다. 그제서야 정부는 ES-1의 생산량 조절에 정부가 개입할 것이라는 선포를 하였는데 보기 좋게 그 제약사의 사장은 제약사를 외국에 팔아버렸다. 이제 이 문제는 전 지구적인 이슈가 되었다. . 너 나 할 것 없이 향만 맡았고 이젠 말라만 갔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생계를 놓치게 되었다.
ES-1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군사를 조직하여 제약사를 테러하기 시작했고 정부간의 분쟁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카오스가 전 지구에 도래 했고, 국제법상 향기먹는 약의 생산을 불법으로 제정하게 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게 되었다. 이후에도 정부는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주가를 널뛰기처럼 왔다갔다하게 만들고 내부에 세력들의 분열을 일으키도록 조종하여 사람들은 점점 ES-1에 대해서 잊어갔다.
나도 약을 끊고 살이 엄청나게 쪘지만 이젠 운동을 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식단 관리에 돌입했다. 편한 삶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 회사-헬스장-집으로의 하루 루틴을 만들었다. 오늘은 퇴근길에 지하철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지하철 광고의 문구는 이러했다.
“이제 맡지 말고 보세요. Eating Optical 당신의 삶을 바꿔줄 안경! 보는 것만으로 배부른 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