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택시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비는 여전히 주르륵 내리고, 도로포장상태는 좋지 않아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우산도 없이 캐리어를 끌고 한참 258-117번지를 찾아 들어가는데 길도 복잡하고, 그 집이 그 집이라 한 번에 찾기가 쉽지 않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야 겨우 찾았다. 벨을 눌러도 답이 없어서 호스트에게 연락했더니 직원이 가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라고 한다. 맞은편 집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며 괜히 에어비앤비(AirB&B)를 했나 살짝 후회됐다.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선택한 것은 베트남 현지인들의 주거문화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신유의 주장을 반영해서다. 하지만 숙소 찾는 데 어려움이 있고, 또 바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니 당장은 ‘현지 문화 체험’보다는 내 몸 편한 쪽이 더 간절해진다.
잠시 후 비를 뚫고 골목길로 들어선 오토바이가 우리 앞에 섰다. 남성 직원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우리 짐을 번쩍 들어준다. 사이트에서 만난 호스트 린(Lyn)은 젊은 여성이었는데 직원까지 있다니, 단순한 집주인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우리 숙소 말고도 8개의 다른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고, 곧 그녀가 맡고 있는 호텔 프로젝트가 론칭할 예정이라고 한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활동하다가 환대산업(hospitality industry) 분야에서 크게 활동해나가는 그녀가 부럽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좁고 구불구불한 나선형 계단을 또 올라가야 한다. 4층 꼭대기에 위치한 우리 숙소에 들어가려면 자연히 다리 운동은 되겠다. 숙소 내부는 좁지만 복층 형태로 되어있다. 문을 열면 바로 옆에는 욕실 겸 화장실이 있다. 현대식으로 깨끗하지만, 욕실의 수전 방향이 잘못돼-세로 방향이 아니라 가로 방향으로 설치되어있다- 샤워할 때 비좁다는 단점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면 주방과 거실 기능이 합쳐진 공간이 나온다. 주방 식기들도 다 갖춰져 있고, 가구들도 작지만, 실용적이라 마음에 들었다. 특히 복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부에 매트를 깔아서 소파의 기능을 채운 부분은 주인의 감각을 칭찬할 만하다. 복층에는 천창 아래 침대가 마련되어 있다. 베트남 주택은 좁고 긴 형태이기 때문에 창문과 발코니를 건물 전면부에만 낼 수 있어 어두운 편이라고 하는데, 모퉁이 건물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우리 숙소는 전면과 측면 창문을 비롯해 천창까지 뚫려있어 집 안이 밝다. 문밖으로 나가면 옥상 발코니로 연결돼 빨래를 널 수 있다. 숙소에 들어오니 직원을 기다리면서 들었던 불만이 쏙 들어갔다.
사진 출처 : 에어비앤비 AirB&B
숙소에 관련해서는 쑥이 진행했다. 에어비앤비 링크를 카톡으로 주고받으며 몇 개 중에 나은 것을 고르긴 했지만 눈으로 보지 않고서야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1군 여행자 거리와 호텔을 지나 경찰서, 학교와 나란히 있는 첫 숙소를 택시 아저씨는 찾지 못했다. 쑥이 도요타자동차 앞에서 세워달라 했고, 우리가 잘 찾아가겠다고 했다. 호스트와 연락은 모두 쑥이 주고받았으니 주소와 구글맵을 보고 도요타 전시장 앞 좁은 골목으로 비를 맞으며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다. 골목이 좁아서 택시가 들어올 수 없어 어차피 맞을 비였다. 초행길이라 짧은 길도 더 길게 느껴졌다. 번지수를 찾아 진짜 동네 골목길 앞에 섰다.
여기가 정말 에어비앤비 숙소가 맞을까? 하며 벨을 눌렀지만, 답도 없다.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비를 가려줄 처마도 없었다. 택시비를 너무 많이 낸 것 같아 찜찜한 마음으로 비를 맞으며 호스트를 기다렸다.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온 20대 초반의 스텝이 문을 열어 가파른 계단을 10번쯤 꺾어 올라 루프톱에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문을 열자 실내용 슬리퍼를 건네주더니 조명과 에어컨을 켠다. 우와~ 쾌적한데. 첫 느낌은 딱 이 집을 떼서 서울로 가지고 가고 싶었다. 혼자 살기에 딱 맞다. 아래층에 두 개의 창과 복층으로 연결되는 창이 커서 채광이 좋았다. 침대에 누우면 창문이 보이는데 불편할까 봐 블라인드로 닫아 놓았다. 아~ 호스트가 호찌민에서 이런 에어비앤비 여러 개 하시는 것 같다고 했는데, 집이 있으면 이렇게 돈 버는구나 싶다.
꼭대기 층까지 오르내리는 불편은 있지만, 옥상이 연결되어 있어 옷, 수건도 널고, 우리 전용 라운지 바도 있었다. 다음날 티셔츠를 빨아 널어두고 오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보며 ‘빨래 널은 것 망했네’라고 생각했는데, 세탁기와 빨래 건조대 쪽에 차양이 있어 홀딱 젖지는 않았다.
좁은 골목이라 차는 들어올 수 없고 다들 집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쏙 들어가는데 철제로 된 대문 안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에 오토바이를 주차해놓거나, 아예 1층 집 안에 들여놓는다. 비 맞으면 안 되고, 집집마다 따로 주차장이 있는 형태가 아니라서 그렇다. 교통수단이 자동차였으면 골목을 넓히고, 집마다 주차공간을 확보했을 텐데……. 교통수단이 (좁은) 골목길을 비롯한 도시구조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여행 와서 또 배운다.
우리 숙소와 같이 좁고 긴 형태의 주택은 현대식 아파트를 제외한 베트남 주택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튜브 하우스라고 불리는 이러한 주택 형태가 생겨난 배경 역시 프랑스 식민시절과 연관 깊다. 당시 프랑스는 도로와 면한 건물 폭의 길이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했다고 한다. 그래서 비용 절감을 위해 건물이 길쭉한 모양으로 들어섰고, 부족한 공간은 위로 층을 올리면서 채웠다고 한다. 일반적인 베트남 가정은 1층에 들어와서 오토바이 주차를 하고, 거실 겸 주방 공간을 둔다. 때론 1층을 가게로 운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층마다 부모님 방,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 자녀 방 등이 하나씩 배치한다. 그리고 옥상에 우리 숙소와 같이 빨래를 건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다른 방을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우리 숙소는 이러한 베트남 주택의 형식을 따르나 한 가정이 아닌 여러 세대가 살도록 층별 공간이 원룸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