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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은 Jun 19. 2020

[그림책 서평] 나오니까 좋다

나오니까 좋다

(김중석 글.그림 / 2018년 / 사계절)


짙은 하늘에 박힌 총총한 별, 차분한 공기, 얼굴과 손끝에 닿는 기분 좋은 바람. 몸을 기울이고 귀를 여는 다정한 목소리들…

"나오니까 좋다!" 는 말이 적격인 순간이다. 어쩌면 이 말은 "이것으로 충분해" 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싶다. 밖에 나오면 그렇다. 짜증스러웠던 일들도 거슬렸던 상대의 행동도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어느 순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까짓 이해 못할 것도 없지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2018년 5월에 출간된 김중석 작가의 <나오니까 좋다>는 밖에 나왔을 때의 말캉한 마음처럼 자유롭고 유쾌하다. "아~ 심심해. 날씨도 좋은데 캠핑 안 갈래?" 릴라의 제안에 싫지만 할 수 없이 따라나선 도치. 길을 잃고 헤맨 끝에 도착한 캠핑장에서 우왕좌왕 릴라는 어설프기만 하고, 그런 릴라가 못 미덥고 답답한 도치는 뒷수습 담당일 수 밖에 없다. 함께(?)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하고 돌멩이라도 먹을 수 있을 때쯤 차려진 밥상 앞에서 누군들 행복하지 않으랴. 밤의 고요를 느끼며 따끈한 차 한잔으로 몸을 덥히고는 흠~ 숨을 한번 들이쉬고 밤하늘을 바라본 순간. "나오니까 좋다~"


이 책에 등장하는, 듬직하고 어리숙한 고릴라와 까칠하지만 일 잘하고 잔정 많은 고슴도치는 주변에 한두 명쯤은 있을법한 친근한 캐릭터다. 두 캐릭터의 성격이 명확히 대비되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숲 한가운데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의 일체감을 더욱 돋보이게도 한다.

<나오니까 좋다>는 주인공 릴라와 도치의 서로 다른 성격처럼,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오일 파스텔과 수채물감 그리고 연필 등이 사용되었는데 각각의 특성이 분명한 재료들임에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자유로우나 균형이 잘 잡혀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 책에는 릴라와 도치 말고도 숲에서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동물이 있는데 뱀이다. 처음 책을 봤을 때 이 뱀은 굉장히 거슬리는 존재였다. 왜 계속 등장하는 거지? 굳이 왜 뱀을 장면마다 그려 넣은 걸까? 사실 숲에서 흔하게 보이는데다 사람들에게 더 편한 동물은 다람쥐라거나 새이거나 그렇지 뱀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책을 몇 번쯤 보니 이 뱀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완벽하게 주변 배경에 스며있는 느낌이 들 무렵 '그렇지. 숲에 사는 뱀이 나무 사이에 그려진 게 뭐 이상한 일이라고? 그게 더 자연스럽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출발이지 않은가.


<나오니까 좋다>는 2005년 <아빠가 보고 싶어> 이 후, 김중석 작가가 글 그림을 함께 작업한 두번째 그림책이다. 그 사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0여권이 넘는 그림책과 동화책의 그림 작업을 해 온 작가의 관록이 이번 책에 고스란히 묻어나 글과 그림에 여유가 있다. 물론 그 여유로움을 작가는 치밀하게 계산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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