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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은 Jun 19. 2020

[그림책 서평] 집, 물건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가 깃든 곳에 관하여


집, 물건 그리고 고양이

가이아 스텔라 글.그림 (한솔수북)


 

이야기가 깃든 곳에 관하여

<집, 물건 그리고 고양이>의 첫 장은 올가라는 내레이터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올가는 우리에게 쓰임새에 따른 집안 물건을 소개한다. ‘앉을 수 있는 모든 것들’ ‘요리에 필요한 모든 것들’ ‘시원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 등 올가의 분류 방식에 따라 열여섯 가지로 묶인 다양한 물건들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양면 가득 그림이 펼쳐있지만 크기와 색감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정돈된 느낌이다. 고무 판화로 사물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찍어낸 방식은 레트로 감성의 문양과 어우러져 독자의 미적 감각을 한층 끌어올린다.     


우리는 무언가를 분류할 때 나름의 기준을 가진다. 가이아 스텔라의 <집, 물건 그리고 고양이>는 분류된 물건을 호명하는 책이자 바로 그 나름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이 단순히 예쁜 그림이 있는 단어책 이었다면 가볍게 책장을 넘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려 깊은 작가 덕에 독자는 분류된 물건에 한 번 더 시선을 두게 된다. 나열된 물건 속에는 ‘나름’의 시간과 관계를 엮어야만 설명되는 것이 배치되어 있다. 가령 ‘올라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아빠,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주는 모든 것들’의 쓰레기통 같은 것 말이다.     


만약 <집, 물건 그리고 고양이>를 분류한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먼저 그림책, 논픽션, 단어책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달리 분류하여 ‘이야기 나누느라 좀처럼 책장 넘기기가 힘든’, ‘물건의 또 다른 쓰임새를 발견하는’ 이렇게도 해보겠다. 이 책이 제시한 물건들의 분류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제목을 숨기고 공통점 찾기를 하거나 우리 집 물건 분류하기 놀이로 확장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이미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머무는 집은 –혹은 세계는- 아이와 어른, 동물과 사람, 사람과 물건,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다만, 책의 또 다른 재미를 반감시킨 한국어 제목은 아쉽다. 올가의 정체는 작은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책장을 넘기게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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