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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일상 Jun 11. 2022

글쓰기 늪

<작가의 목소리>를 읽

힘든 과정을 버텨내고 꾸역꾸역 몸과 정신을 망가트려가다 보면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 텐데, 이때가 되면 이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글쓰기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허우적, 어쩌면 평생 동안 이루지도 못할.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내가 정신적으로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쓰지 않으면 더 미쳐버릴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쓰세요. 그때는 써야 합니다. 써야만 합니다. 묵묵히, 하지만 끊임없이. 엉덩이를 붙이고. 꾸준히. 좋은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쓰시면 됩니다.   - <작가의 목소리> 중에서 -


봄이 참 좋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한파를 견딘 후 포근함이 느껴지면 무조건 반갑다. 코로나19로 두 번의 봄을 잃고 다시 찾은 계절을 원 없이 누리며 열정적으로 운동하고 다양한 만남을 이어가면서 변화무쌍한 봄을 보냈다.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는 시기가 지나고 쨍한 햇살과 짙어가는 녹음이 어우러진 계절이 되니 심장은 더 요란하게 뛴다. 발길은 자꾸 집 밖을 향해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든데 출처를 알 수 없는 속삭임에 종일 귀가 간지럽다.


‘글 써야 하는데….’


글 쓰는 내가 좋다. 펜을 쥐고 끼적이는 게 즐겁고 키보드 자판 위에 열 손가락이 자유롭게 춤추는 시간이 행복하다. 물론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느라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둔 채 눈동자만 요리조리 굴릴 때가 더 많지만. 일기를 쓰고, 일상을 기록하고, 단상을 남기면서 매일 쓰는 삶을 살며 차곡차곡 쌓인 글이 내 삶을 어디로 이끌어갈지 궁금해지곤 한다.


요즘 도통 글을 쓰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는 익숙한 핑계로 소중한 마음을 뭉개기 싫어서 여러 번 이유를 생각해보지만 도통 찾을 수 없다.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뿐. 글쓰기는 품이 참 많이 든다. 우선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하고 글의 주제를 잡아야 한다.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수준의 글감인지 가늠해야 하고, 생각의 파편을 이어가며 겨우 글을 쓰기 시작한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까지도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글이라도 술술 풀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백스페이스를 거침없이 치는 시간을 다시 견뎌야 하니 글 쓰는 과정은 정말 끝이 없다. 글의 흐름을 일관되게 이어가야 하니 틈새 시간으로 채우기에도 한계가 있다. 긴 호흡의 시간을 갈구하며 글로 풀지 못한 채 핸드폰 한 편에 쌓여 가는 메모는 생명력을 잃은 채 무게감만 더한다. 


‘굳이 힘겹게 글을 써야 하나?’


글 쓰는 당위성을 고민하지 않고 매일 썼는데 쓰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자꾸 이유를 묻게 된다. 이상하지. 작가가 되겠다는,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글쓰기로 밥벌이하는 것도 아니고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니 멈추면 되는 데 쓰지 않는 것 또한 편치 않다. 어쩌라는 건지. 긴 다리의 중간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하는 느낌이다. 명확한 목표가 없어서 괜스레 고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계속 쓰기 위해서 작가의 꿈을 가져야 할까? 누구나 책 한 권은 쓴다는 시대니. 와중에 내 이름의 책 한 권이 나와도 계속 쓰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은 명확히 보인다. 쓰지 않고 삶을 제대로 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그래, 쓰자!’


어색한 키보드 위의 손놀림이 곧 익숙해진다. 정신없이 흘러가던 시간을 잠시 붙잡고 질문을 던진다. 한 문장과 다음 글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묻고 난잡한 머릿속 생각과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찾는다. 어쩌면 쓴 글보다 지운 글자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묵묵히 쓰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단락이 나뉜 글을 마주한다. 간결하게 정돈된 글은 나에게 딱 어울리는 옷을 입은 마냥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글쓰기는 비법이나 정답이 없지만, 모두가 ‘잘’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잘’의 기준을 스스로 찾아가고 정해야 한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한 예리한 감각이 탐난다. 글쓰기는 비슷한 일상 속에 세심하게 차이를 발견해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아가는 적극적인 내가 될 수 있는 길이다. 나의 '잘'은 당연한 것에 자주 질문을 던지고 이런저런 고민 속에서 나를 관찰하고 느끼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을 쉽게 휘발되니 그때그때 글로 남겨야 하고 다양한 감각의 촉수를 갖기 위해 좋은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한다.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묵묵히 해내기엔 쉽지 않다. '시간이 없다'라는 생각 속에는 절대적으로 양이 부족한 면도 있겠지만 욕심을 꽉 채워 완벽한 글을 쓰고 싶은 막연한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완벽한 글은 없다. 쓴 글과 쓰지 못한 글만 있을 뿐이다. 막연한 '잘' 대신 '가볍게, 정성껏, 꾸준히'를 기억하며 나의 목소리를 찾아가야겠다. 글쓰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요즘 잠시 힘을 빼고 늪을 제대로 느껴봐도 좋지 않을까?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글감이 되는 게 글을 쓰는 사람의 특권이니깐. 슬프고 힘들고 노여운 순간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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