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를 읽고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깐.”
<모모> p.77
오늘 코칭 주제는 책 태기이다.
“요즘 책 읽는 시간이 고역이에요. 해야 할 것이 많은데 숙제처럼 다가와서 즐겁지 않아요. 반면 새롭게 흥미가 생긴 일은 쉽게 즐길 수가 없어요!”
책 쇼핑만 즐기던 사람이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된 지 4년째다. 하루 30분 정도 책 읽는 시간을 바랐는데 꿈보다 더 큰 ‘천 권 읽기’ 목표가 생겼고 매달 10권 남짓의 책을 읽는 삶을 살아간다. 여러 독서 모임에 참여하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사귀었고 책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글로 남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삶이 일상 깊이 스며들었다. 요즘 뿌듯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책을 펼치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더위 때문인가? 그동안 키운 근력 덕에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글을 쓰는 삶을 겨우 이어가고 있으나 진심을 쏟지 못하니 만족스럽지 않다. 반면 새로운 관심거리가 생겼다. 그림과 운동인데, 자꾸 눈에 밟히고 마음껏 하지 못해 아쉽다. 싫증 나면 그만두고 원하는 것을 하면 되는 상황인데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지루한 일은 미련이 남아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더 채워야 할 것 같고 흥미가 생긴 일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자꾸 주저한다.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애꿎게 시간을 또 탓한다. 너는 왜 항상 부족한 거니!!
“‘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왜에 대한 이유를 묻거나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시키는 사람이 있나요?”
귓가에 '잘해야 한다'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주문에 걸린 듯 질문을 따라 무엇을 더하고 어떻게 잘할지를 계속 고민했다. 사실 무엇을 더 할지 명확히 알지 못한 상태이고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는다.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나를 괴롭히는 건 바로 나뿐. 세상이 보여주는 결과, 성과, 성취에 집착해서 그럴듯한 허상을 만들었고,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자주 다그친다. 선생님의 질문 덕분에 주문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혔고, 긴 침묵이 흘렀다.
책을 잘 읽고 멋지게 남기고 싶었다. SNS상에서 보는 손글씨로 빼곡히 찬 독서 노트나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 한없이 부러웠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 막연하게 부러운 모습만 탐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완벽주의로 식상한 결과물은 만족하지 못하니 남을 따라 하는 것도 쉽게 하지 못한 채 책에 대한 마음만 심드렁해졌다. 완벽하지 못한 상황은 새로운 관심사에 눈길을 주는 것 또한 불편하게 했다. 운동하고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책 읽기를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면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나를 달랬다. 독서의 완성단계라니! 질문에 답하며 숨겨진 생각을 주섬주섬 들춰보니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을 걷어내자 진짜 원하는 마음인 반짝인다.
‘재미있게 읽고 즐기면 안 되나? 그냥….’
책과 친한 벗이 된 상황에서 이제는 재미있게 즐기고 싶었다. 마음이 동하면 글을 쓰지만 마음속에 남겨진 추억만으로 충분했다. 가볍게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는 시시한 그림이라도 당장 그리고 싶었다. 운동을 더 하고 싶은 날은 지칠 때까지 달리고 마음 편히 쉬고 싶었다. ‘잘’ 하기 위해 주저하기보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즐겨보고 싶다. 지금까지 내 삶은 재미와 즐거움보다 의미와 목적에 더 무게를 두었는데, 이제는 가벼워지길 원했다. 외부 기준을 향한 성취와 인정을 갈구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에 지친 마음이 숨 막힌다 외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서 가능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나를 훌훌 벗어버렸다. 이른 새벽잠과 사투를 벌이다 겨우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는 ‘잘’의 기준에 전혀 맞지 않지만 사랑과 열정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충분하다. 책 내용을 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글도 엉성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고 최선을 다해 즐겨볼 것이다.
벅차고 힘겹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쉬는 나를 상상했는가! 나는 성취와 인정을 원하고 작은 변화를 느끼는 것을 즐기기에 계속 움직일 것 같다. 잘하기보다 즐기기 위해 궁리하면서. 잘하기 위해 고민만 하며 멀뚱이던 일상이 더 바빠질 것 같다. 여전히 부지런히 일상을 살 것이고 매 순간 정성을 다하는 삶을 나는 원한다. 다만 앞으로는 즐겁고 유쾌하게. 책 태기는 책을 내려놓으라는 신호가 아니라 진짜 원하는 방향을 찾으라는 귀한 선물이었다.
자, 오후에는 오일파스텔을 꺼내 딸과 그림을 그리고 주말에는 원 없이 걸어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