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유럽 맥주여행_맥주에 취한 세계사]
맥주와 친해지기 시작할 때 만난 책
작년 이맘때쯤, 코시국이 길어지면서 대부분의 여가생활은 집에서 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책이나 영상을 많이 봤는데, 이때 함께했던 파트너가 바로 맥주!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즐기는 이른바 ‘책맥’은 내게 새로운 취미이자 즐길거리로 자리잡았고, 덕분에 맥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늘어났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흔히 보던 맥주를 브랜드별로 하나둘씩 섭렵해가던 중,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평소 역사를 좋아하고, 마침 맥주를 주제로 다루는 책이라니 망설임 없이 바로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열혈 맥덕이 들려주는 유럽의 맥주 이야기
저자 백경학 님은 맥주에 대한 애정이 넘쳐흘러 ‘맥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신 분’ 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느 정도냐면 1997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독일에서 유럽 각국의 맥주를 공부하셨고, 2002년엔 국내 최초 하우스맥주를 생산하는 맥줏집 ‘옥토버훼스트’를 오픈하셨다고. (지금은 물러나셨지만, 가게는 여전히 운영 중) 이후로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맥주를 연구하러 유럽을 방문하신다니, 이 정도면 맥덕 중에 맥덕 중에 맥덕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책은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볼만 하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맥주 이야기와 맥주에 관련된 지식, 맥주의 역사를 방대하게, 그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적당한 길이의 파트로 나눠서 이야기한다. 덕분에 308쪽이라는 꽤 긴 분량이었는데도, 길어서 읽기 힘들다는 생각 없이 정말 술술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본고장을 직접 방문해서 맛본 맥주 브랜드의 경험담을 읽다보면, 책으로 해당 브랜드의 맥주를 실시간으로 같이 마시는 듯한 행복한 상상에 빠지게 된다.
맥주의 기원부터 세계 최대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후기, 역사 속에서 맥주가 가졌던 위상 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동안 맛과 브랜드로만 보던 맥주가 색다르게 보일 것이다. 맥주는 인류의 땀과 웃음과 역사로 발효되어 우리에게 온 소중한 음료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맥주가 눈에 아른거렸고, 중간중간 유혹을 떨치지 못해 캔맥주 하나 옆에 두고 긴긴밤 함께 즐겼다.
맥주에 대해 많이 배웠고, 맥주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도 많이 알게 되어 맥주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책에 나오는 맥주 브랜드들의 본고장을 직접 가봐야겠다는 큰 꿈도 꾸었다. 그 곳에서 맛보는 맥주는 (기분 때문이라도) 분명 차원이 다른 맛을 선사할 테니까.
1부. 유럽, 맥주에 취하다
고대부터 중세 유럽까지의 맥주 역사를 쉽고 재미나게 알려준다.
{ 기억에 남는 부분 }
* 최초의 맥주가 가진 별명은 ‘흐르는 빵’ 이었다. 고대인들은 식사 대용으로 맥주를 마시거나, 노동자에게 월급을 맥주로 지급하기도 했다.
* 최초의 맥주는 탄산이 적고 걸쭉했으며, 보리 등의 원료 찌꺼기가 표면에 둥둥 떠 있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맥주 항아리에 아주 긴 빨대를 꽂아 맥주를 마셨다.
* 1516년 독일 바이에른 공국은 맥주 제조에 관련된 규정 ‘맥주 순수령’을 발표했다. 이 시기 바이에른 공국은, 맥주 제조시기가 시작될 때 사람들이 냇가에서 용변을 보지 못하도록 단속까지 벌였다. (당시 각 가정엔 화장실이 따로 없어서 사람들은 냇가에서 용변을 해결했다)
* 중세 교회의 수도사들은 사순절 기간동안 이어지는 금식에 너무나 지친 나머지, ‘금식기간 동안 맥주만은 마시게 해달라’고 교황청을 간절히 설득했다. 당시 대부분의 맥주는 교회의 수도사들이 제조했고, 그들에게 맥주는 중요한 식량이자 수입원이었다. 동시에 고된 수도사 생활을 달래주던 위로의 음료였다.
2부. 유럽 맥주 산책
유럽에서 탄생한 다양한 맥주의 종류와 맥주 브랜드, 저자가 경험했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를 설명한다.
{ 기억에 남는 부분 }
* 필스너우르켈은 체코에서 태어난 라거 맥주 브랜드다. 라거 계열에선 맛과 품질 모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2018년 일본 아사히에 인수되었다.
* 파울라너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맥주 브랜드다. 참고로 맥주캔에 그려져 있는 인물도 사도 바울이다!
- 개인적으로 가장 놀랬던 부분. 성경 속 인물의 이름으로 맥주 브랜드를 만들다니..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뭔가 어안이벙벙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유럽에 맥주를 널리 알렸던 요소 중에 교회와 수도사들이 있으니, 뭐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연상이었지 않았나 싶다.
3부. 맥주를 사랑한 사람들
유럽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맥주를 대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기억에 남는 인물 }
* 독일의 정치가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모으기 위해, 독일 대중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인 맥줏집에서 연설과 토론을 자주 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맥주를 별로 즐기지 않았고, 맥주를 마셔도 겨우 몇 모금만 마셨다고 한다.
*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맥주를 굉장히 많이 마셨고, 맥주 맛이나 품질을 꽤 까다롭게 따졌다고 한다. 이는 자기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고향에서 맥주 양조와 맥줏집 운영을 관리감독하는 공무원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맥주 양조기술을 배운 수녀 카테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그녀의 가족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했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에 대한 재판이 열리던 날, 긴장을 풀기 위해 맥주를 마셨다. 이 때 맥주의 기운으로 자신감이 생긴 루터는 재판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확고히 해, 가톨릭 교회의 폐단을 알리고 개혁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