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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재 YeonJay May 14. 2023

#004. 왜 그만두는데? (2)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저질러 버렸다.

5년 만에 퇴사를 하겠다는 말을 끄집어냈다.

이 얘기를 입 밖으로 끄집어 내기까지, 나름대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입 밖으로 내민 이상 회사에서는 재빠르게 내 자리를 대체할 사람을 구할 것이다.

어쨌든 회사는 돌아가야 하니까.

후임자가 구해지면 그동안 내가 맡았던 일을 몇 주에 걸쳐 전해주고 짐을 챙겨 떠날 것이다.

내 흔적은 최대한 지우고.


당장 앞으로 뭘 할 건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이직을 준비하고 지원했던 곳들 중 겨우 한 곳만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그나마도 떨어졌지. 몇 년 만에 어렵게 본 면접 결과를 보니 실망이 더 컸나 보다.

퇴사를 말한 지 10일이 넘어가던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지금 이직을 해야 하나? '


그래, 지금의 상태는 내 한몸 이끌기도 힘든 '의욕 상실' 이다.

구직 사이트에는 관련 직종의 구인광고가 꽤 많이 뜨고 있지만...다시 입사지원할 용기도, 에너지도 없다.


이직할 곳 없이 무작정 퇴사 통보를 했다고 전했을 때, 가족이 내게 했던 말들.

충동적이다

대책이 없다

현실감각도 없다

내겐 회사 월급 외에 다른 수입원이 없었다.

일을 빠릿빠릿하게 하거나 눈치가 빠르거나 생활력이 강한 스타일도 아니다. 나이도 30대에 접어들었다.

" 회사 입장에서는 한 살이라도 어린 지원자를 뽑고 싶어 할 거다 "

" 너는 너무 고생을 안 해봐서 모른다 "

가족은 내게 ‘현실’을 얘기했다.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아무도 " 왜 그만두냐 " 라고 묻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밝히는 ‘내가 일을 그만두는 진짜 이유’

 "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

쉬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딱 한 달, 아니 일 주일 만이라도.


그때 내겐 ‘현실’보다 ‘나 자신’이 너무 감당하기 어려웠다.

회사에선 ‘연차가 이 정도 됐으니 이것도 맡아서 해라’며, 내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던 범위의 일도 맡겼다. 그쪽으로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는데, 마땅히 할 사람이 없으니 무턱대고 나한테 던진 느낌이었다.

같이 있던 팀원(당시 갓 입사한 분. 그분도 관련 지식이 거의 없는 편이었음) 과 나눠서 하려해도 벅찬 내용었지만, 회사에서는 우격다짐으로 해보라고만 했다.

어떻게든 맡은 일이기에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야근까지 하며 일을 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핀잔 뿐이었다.

(더 슬픈 건 야근수당도 못 받았다)


출근 시간만 되면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급기야 출근시간, 급한 신호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 공용 화장실을 찾는 날도 허다했다.

업무 시간엔 집중이 안 되거나 졸음이 너무 많이 쏟아졌다. 예전에 진단받았던 디스크 협착증 때문에 허리는 계속 아팠고, 회사 점심시간엔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을 마주치거나 불편한 마음이 생기면

소화가 안 돼 괴로웠다. 가방엔 항상 액상 소화제와 사이다 한 캔은 필수였다. 언젠가부터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옆구리가 아프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나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팀장이란 직급의 무게를 생각하며 회사 일을 해냈다.


잔뜩 흐리고 출렁이는 일상이란 바다를 항해하던 나란 배는 예상치 못한 돌풍을 맞이하면서 심하게 휩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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