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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관 Dec 06. 2024

계절과 맛, 망원 [고미태]


여러분은 각 계절마다 생각나는 메뉴가 있으신가요?

제철 생선이나 채소 외에도 그 계절에 생각나는 메뉴는 꼭 하나씩은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메뉴 말고 어떤 계절이 와도 생각나는 가게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계절에  맞는 면 메뉴를 선보이는 가게, 합정 고미태입니다.


고미태는 합정역을 기준으로는 고 밑에, 망원역을 기준으로는 고 위에 있습니다. 합정역을 기준으로 했나 봅니다.


제가 먹어 본 메뉴를 기준으로 하면 여름에는 닭콩국수를, 겨울에는 오리소금라멘을 팝니다(4월 한 달간은 쑥국수를 판매했다고 합니다).



먼저 여름의 계절 메뉴인 닭육수 베이스의 콩국수입니다. 


원래도 콩국수를 좋아하는데, 이곳의 콩국수는 닭육수를 기반으로 해서 그런지 기존의 콩국수와는 맛에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콩국수가 고소한 콩맛을 기반으로 콩물에서 오는 묽은 제형의 녹진함을 준다면 이곳의 콩국수는 닭의 기름에서 오는 고소함과 녹진함이 더해진, 기존의 콩국수와 비교한다면 어딘가 모를 느끼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콩국수입니다.


만약 느끼하기만 했다면 콩국수의 새로운 해석정도로 끝났겠지만, 이 콩국수에는 킥이 존재합니다.


다시 고명을 잘 보면, 닭고기와 함께 참외와 오이, 피망이 올라갑니다. 이 참외 녀석이 킥 역할을 충실히 해줍니다. 느끼함이 느껴진다 싶을 때 한 입씩 베어 물면 달콤한 듯 상큼한 참외의 향이 기름의 고소함과 융화되며 풍미를 더해줍니다. 참으로 기특한 참외입니다.


참외/오이류를 싫어하는 분들은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맛을 놓치기엔 너무 아쉬우니 이참에 둘 중에 하나는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봅시다. 저의 후기로 생각보다 많이 느끼하지 않을까 고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콩국수와 비교했을 때의 얘기지, 라멘과 비교를 해본다면 훨씬 고소하고 깔끔한 맛이 느껴지는 라멘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라멘을 완뚝하는 경우가 손에 꼽는데, 이곳의 콩국수는 완뚝을 하고도 아쉬움을 느낀 점을 미루어보면 그 담백함이 전달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겨울의 맛입니다. 사진을 찍는 취향이 달라져서인지 굉장한 접사로 찍혔네요.

오리소금라멘은 데친 시금치와 표고버섯, 오리고기와 껍질 튀김, 그리고 조그만 귤껍질이 고명으로 올라갑니다.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의 겨울에 먹고 최근 다시 판매를 시작해 오늘 먹으러 갈 생각인데, 벌써 침이 고입니다. 


겨울의 라멘은 오리를 기반으로 육수를 냈기에 더 기름진 맛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겨울에는 속을 따뜻하고 든든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에 한 편으로는 담백함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마 시금치와 표고버섯이 깔끔한 맛으로 중화를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리고기는 굉장히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기름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 고기를 함께 올라간 조그만 귤껍질과 함께 먹으면 여름과는 또 다른 풍미가 느껴집니다. 여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콩국수의 맛에서 오는 기분 좋은 위화감을 달래주는 상큼함의 풍미가 느껴졌다면 겨울에는 기대한 바에 맞춰진 든든한 고소함에 취할 즘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달콤한 풍미라 할까요? 각 계절의 매력이 정말이지 잘 느껴지는 구성입니다. 


이 맛은 계절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은 더위로 오는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콩국수의 참외는 극강의 상큼함으로 그 스트레스를 한 번에 사라지게 합니다. 또, 겨울에는 추위에 움츠러드는 몸을 따뜻하게 달래주러 들어간 라멘 온돌방에서 귤을 까먹는 느낌이라 할까요? 가만히 눈을 감고 따뜻한 상상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맛입니다.




이런 특별함 말고도 하나의 특별함이 더 있습니다. 바로 계절에 맞는 과일로 달인 물을 주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참외 껍질로 달인 물을, 겨울에는 깐 귤을 통째로 달인 물을 내어줍니다. 이 점도 위에 얘기한 모든 경험과 연결되어 이 가게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습니다.




고미태는 작은 주방에서 사장님이 혼자 음식을 내어주십니다. 무심한 듯 친절한 모습에 늘 정이 가는데, 특히 왼손잡이/오른손잡이에 맞춰 수저를 놓아주는 모습이 사소하지만 감동적인 포인트로 다가옵니다. 더 자주 갈 수밖에 없어지네요.


날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방 안에서 귤을 까먹는 것도 좋지만 한 번은 또 다른 느낌으로 그 기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겨울에는 고미태에서 한파 대비를 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또 다른 취향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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