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월급날 즈음이면 고깃집을 한 번씩 갔었다. 아버지는 항상 두툼한 냉동삼겹살을 시켰고, 직접 정성스럽게 구워주셨다. 프라이팬 비슷한 불판에 쿠킹호일로 대충 감싸둔 그 위로 살짝 붉은 기가 드는 냉동삼겹살은 스스로 녹으면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불판에서 먹기 좋게 익은 삼겹살 대부분은 내 몫으로 시켜둔 공기밥 위에 얹어졌다.
따로 뭘 곁들이지 않아도 뜨거운 삼겹살 그 자체가 입안에서 춤추는 것이 즐거웠다.
온몸에 고기냄새가 배이고, 주변 다른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절정에 달할 때 아버지와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비워낸 소주 때문에, 나는 굽자마자 날름날름 먹었던 뜨거운 삼겹살 때문에.
그 시절, 아버지가 삼겹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줄 알았다. 많이 먹어야 할 역할은 내 몫이고, 내가 마시지 못할 소주의 몫은 아버지의 몫으로만 여겨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소주는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시름을 달래는 벗이었고. 삼겹살은 아들에게 주는 나름대로 최선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알게됐지만, 아버지는 돼지고기 중 특히나 삼겹살을 너무나도 좋아하셨던 것이다. 그땐 그걸 왜 몰랐던 것일까?
오늘 저녁, 고깃집에서 내가 직접 냉동삼겹살을 구우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거 같은데, 정작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와 함께 고깃집을 가질 않았다.
너무 늦지 않게, 날을 잡아서 아버지와 함게 그때 그 시절처럼 고깃집에서 마주 보고 냉동삼겹살을 구워봐야겠다. 그때는 아무래도 집게와 가위는 내가 챙기고, 따뜻한 공기밥 위로 잘 구운 삼겹살 한 조각을 얹어드려야지. 조금이나마 그 마음, 보답이 될 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