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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샘 Jun 25. 2020

올해 여름 폭염이 걱정되는 당신에게

유방암에다가 코로나블루까지 앓긴 싫어


 
올해 여름은 만만치 않은 폭염이 예상된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넉 달째 코로나사태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체 올여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오랜 직장생활을 해왔던 나에게 여름은 그저 휴가를 어디 갈까 정도의 옵션만 주어졌던 계절이었다. 큰맘 먹고 해외에 나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성수기를 피해서 가볍게 가까운 휴양림을 다녀오기도 했다. 올해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다. 일단 코로나19 여파로 거창하게 휴가를 계획할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내 발목을 잡는 것은 내가 재작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아만자(암환자)라는 현실인식이다. 재작년 8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났을 때 나는 금방이라도 죽는 줄 알고 유서라도 써놓고 싶은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그로부터 22개월이 흐른 지금은 거의 일반인(?)의 컨디션을 되찾았다. 물론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친 상태다. 단, 여성호르몬을 차단하는 약을 10년간 먹어야 한다. 그 약은 내가 아직 치료 중에 있음을 매일 확인시켜준다.
 
요즘 나를 사로잡는 것은 텃밭을 직접 가꾸면서 자연에 가까운 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직장을 다니며 바쁘다고 화초에 물도 제대로 주지 못했던 나는 선인장조차도 기어이 죽게 만드는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농약을 치지 않은 농작물을 먹으라는 자연암치유법을 책으로 읽었을 때 그럼 내가 한번 식물을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과연 식물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시도해보기로 했다. 첫 시도는 작년 겨울에 3단 재배기를 사서 심은 보리싹이었다. 보리싹은 수경재배가 가능해서 물만 갈아주어도 쑥쑥 잘 자란다는 말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중 일주일 만에 파란 싹이 쑥 올라올 때의 감격은 잊지 못할 것이다. 마치 자식이 잘 먹고 키가 자라는 것과 비슷한 흐뭇한 기분이었다. 그것을 잘라서 녹즙을 짜 먹었을 때 내 손으로 키운 것이라서 그런지 먹기 싫던 녹즙에 단맛이 돌았다.
 
봄이 되면서 나는 식물을 본격적으로 키워보기로 했다. 서울이지만 단독주택이라 여유공간이 많았고 1층 주인집 마당에는 감나무와 목련, 국화, 앵두나무, 백합, 사랑초 등속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외출할 때마다 씨앗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상추의 일종인 안동적치마, 시금치, 부추, 고추, 방울토마토, 들깻잎, 나팔꽃, 라벤더 화분과 열무나 얼갈이배추를 키우기 위해 스치로폼이나 고무다라이를 들여놓아 베란다는 작은 정원을 이루었다. 소소하게 장만한 화분이 지금은 마흔 개 정도가 즐비하게 늘어섰다. 매일 신선한 샐러드로 식탁에 올라오는 것은 상추다. 거기에 들깻잎까지 한두 장 쭉쭉 찢어서 올려 버무리면 그 향이 입 안 가득 청량감을 준다. 3월초 봄 햇살이 내려쬐기 시작할 즈음 씨앗을 아주 작은 화분에 심을 때는 새싹이 올라올 때마다 경이로웠다. 점점 따뜻한 봄이 되면서 고추는 흰 꽃을 활짝 피우더니 꽃이 떨어지자 그 자리에서 초록색으로 빼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킥킥거리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마트에서 사서 먹고 난 단호박은 씨를 말려서 심었는데 잎사귀가 내 손바닥보다 더 크게 자란다. 방울토마토의 꽃이 샛노란 색이라는 것은 덤으로 안 사실이다. 우리 집 안방의 창문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접시꽃은 아침에 활짝 피고 오후에는 지는데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대로 스트레스가 풀리고 힐링이 된다.
 
이제 햇볕은 뜨거워져 적지 않은 결실로 나에게 기쁨을 안겨줄 과일과 채소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텃밭을 손수 일구면서 싱싱한 농작물을 얻는 것 외에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은 뜻밖의 행복이다. 자연이 흙 속에서 생명을 키워나가는 이치를 배워가는 시간은 나에게 반드시 건강해져서 다시 소생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로 우리가 지켜야할 수많은 수칙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자칫 요즘 쥐도 새도 모르게 번진다는 코로나블루를 느낄 겨를이 없다. 눈 뜨면 작물이 얼마나 컸을까, 혹시 목마르지는 않을까 하며 텃밭에 나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여름이 가장 기대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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