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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샘 Jun 21. 2020

김치만둣국 한 그릇, 그 뜨거운 그리움

브런치X우리家한식 공모전

   소복하게 쌓인 흰 눈이 채 녹지도 않은 한겨울, 중학교 다니던 나는 여섯 살 터울의 친언니와 함께 동네 재래시장에 들어섰다. 과일 채소를 내놓고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그 중에서 익숙하게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들어가서 물기를 뺀 두부를 파는지 물었다. 설 명절이 지나면 짠 두부가 안 나온다는 주인의 대답에 할 수 없이 판두부 다섯모를 사가지고 나왔다. 언니는 엄마가 적어준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보았다. 아, 당면도 사야지. 우리는 다시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그 옆 정육점에 가서는 돼지고지 앞다리 살을 두 근 갈아달라고 했다. 돼지고기 두 근에 두부 다섯모, 한 뭉치의 당면을 넣은 까만 비닐봉투를 주렁주렁 손에 들고 집에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지만 엄마가 해주는 만둣국을 먹을 생각에 한껏 신이 났다. 우리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은 만둣국이었다.

  만둣국을 떠올릴 때마다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는 풍경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월동 준비로 김장을 집집마다 보통 백 포기씩 했다. 품앗이로 이웃집을 돌아가면서 김장을 해주고는 받아들고 오는 김치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곤 했었다. 지금은 사시사철 싱싱한 채소 과일이 마트에 넘쳐나지만 그때에는 겨울이 되면 그저 김장김치 한포기 꺼내서 찌개 끓여먹고 볶아먹고 콩나물 넣어 김칫국 끓이는 것이 매일의 식단이었다. 엄마가 외출하고 없을 때에도 우리 삼남매는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그 중에서 김장독에서 막 꺼낸 김치로 만든 만둣국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었다. 한겨울 김장김치는 앞마당에 묻어놓은 김장독 안에서 살얼음이 낀 채로 익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커다란 양은그릇을 들고 나와 김치를 서너 포기 꺼내 담는 순간, 옆에서 구경하는 내 콧속으로 물큰하게 끼쳐지는 새콤한 냄새에 입 안에 순식간에 군침이 고였다. 그때 김치의 새빨간 색깔이 겨울 햇살을 받아 눈부실 정도로 빛나고 맛깔나게 느껴졌다.

   만두 만드는 날은 우리집이 잔칫집처럼 북적였다.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인데도 한겨울 김치만두는 노력과 시간을 배신하지 않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엄마는 김치를 썰면서 손목이 시큰거린다고 했다. 믹서라는 훌륭한 기계가 있었지만 엄마는 기계를 쓰면 맛이 안 난다며 손으로 직접 썰어야한다고 했다. 숫돌에 식칼을 쓱쓱 갈아가며 김치를 종종 썰었다. 도마 위의 올려놓은 김치는 빨간 국물을 줄줄 흘리며 엄마 손동작에 박자 맞추며 한참 다져졌다. 종종 썬 김치를 면포에 담아 꽉 짤 때마다 엄마는 아이쿠, 손목이야, 하면서도 그 일을 고집했다.

  당면은 두 시간쯤 불려서 삶았는데 충분히 삶아진 듯싶었어도 엄마는 젓가락으로 한 가닥 건져 올려 반드시 찬물에 식혀보고 확인했다. 돼지고기는 프라이팬에 소주와 마늘, 생강가루를 넣고 달달 볶았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식구들은 누린내 나는 것에 질색했다. 엄마는 요즘 새로 알게 된 누린내 없애는 비법이라며 커피가루를 한 수저 넣었다. 짠 두부를 사오면 일이 줄지만 그런 행운이 따라주지 않을 때에는 판두부를 면포에 담아 꽉 짰다. 일을 돕겠다고 언니가 나서서 짜고 나면 엄마는 다시 두 손에 힘을 주어 면포를 쥐어짰는데 어처구니없게 물이 주르르 흘렀다. 언니와 엄마와 나는 그때 동시에 웃었다. 엄마는 물기 없이 준비한 재료를 큰 볼에 모두 담아 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 후춧가루를 넣고는 고루 섞이도록 한참을 치댔다. 언니와 오빠와 나는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한입씩 간을 보았다. 우리 식구는 그다지 살가운 성격들이 아니었는데 만두 만드는 날만큼은 참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엄마는 만두피도 직접 반죽해서 만들었다. 보통 추운 날 만두를 해먹는데 웃풍 센 슬라브 집에서 밀가루반죽을 하면 잘 뭉쳐지지 않았다. 그럴 때 엄마는 물을 데워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뭉쳤다. 밀가루가 물과 섞여 진흙처럼 손에 들러붙은 반죽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맨들맨들하고 고운 반죽이 되었다. 엄마는 큰 그릇을 뒤집어 덮어 한 시간 숙성시켰다.

  만두피 만드는 것도 엄마의 기술이 필요했다. 엄마는 만두피가 두꺼우면 맛없고, 너무 얇으면 만두가 터진다고 했다. 반죽은 홍두깨로 밀었는데 어느 때에 그 홍두깨를 어디에 넣어두었는지 찾지 못하면 소주병이 대신했다. 소주병의 상표를 물에 불려서 손톱으로 긁어가며 떼어내는 일은 내 몫이었다. 엄마는 큰 도마에 밀가루를 고루 뿌린 다음 복숭아 크기만큼 떼어낸 반죽을 올려놓고는 힘껏 팔을 움직여 밀가루반죽을 넓게 눌러서 한참을 정성들여 폈다. 그 다음에는 주전자 뚜껑을 꾹 찍어 눌렀다. 그러고는 둥근 만두피를 하나씩 떼어냈다. 주전자 뚜껑의 크기에 따라 왕만두가 되기도 하고 작은 아기만두가 되기도 했다.

  둥근 만두피 안에 만두소를 넣는 일은 언니와 내가 담당했다. 간혹 오빠도 거들겠다고 나섰다가 속재료로 넣은 김치가 조금 삐져나오면 언니와 나의 타박을 받고 물러나기도 했었다. 언니와 나는 만두 터지지 않게 하는 시합이라도 붙은 듯이 만두를 만들어냈다. 밀가루를 넓게 뿌린 쟁반 위에 하나 둘씩 완성된 만두가 늘어갔다. 가스렌지 위에는 엄마가 올려놓은 솥 안에서 소고기 사태나 양지머리 혹은 멸치와 다시마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우러나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코끝을 맴도는 그 향기로운 추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엄마는 팔팔 끓는 국물 안에 만두를 하나씩 집어넣었다. 만두는 물이 펄펄 끓을 때 넣고 바로 국자로 살살 저어주어야 만두끼리 붙지 않는다는 것도 엄마의 오랜 내공이었다. 한참 끓이다보면 익은 만두는 하나둘씩 위로 떠올랐다. 엄마가 기막힌 솜씨로 얇게 빚은 만두피는 김치의 선홍빛으로 점점 진하게 물들어갔다. 국물 위로 떠오른 만두가 반투명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만두 하나를 국자로 건져서 그릇에 담았다. 후, 하고 불면서 맛보는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 식구들은 하나같이 입이 짧았는데 만두만큼은 탐욕스럽게 먹었다. 네 식구가 먹는 만두는 한 사람이 열 개씩만 먹어도 사십 개였다. 한 번에 다 끓이지 못해서 먹는 중에 추가해서 끓였다. 만두 크기도 커서 충분히 끓이다 보면 만두가 터지는 일도 많았다. 엄마는 터진 만두를 싫어했다. 그래서 만두 터지지 않게 하는 비법을 줄기차게 찾아냈는지도 몰랐다.

  만둣국 위에 올린 고명은 특별하지 않았다. 어슷하게 썬 대파는 넉넉하게 넣는 것은 기본이었고 만두소를 만들고 남은 두부를 길쭉하게 썰거나 달걀을 두 개 풀어서 한소끔 끓인 게 전부였다. 큰 대접에 원하는 개수만큼 담아 상에 올리면서 모두 모이라고 부르는 순간이 나의 유년시절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뜨거운 만두를 숟가락에 올려 후후 불면서 앞니로 한입 깨무는 순간 터져 나오는 김치와 돼지고기, 당면, 두부가 참기름과 후춧가루에 어우러진 그 향에 나는 까마득하게 취했었다.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그 뒤로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결혼해서 아들딸을 키우느라 세월을 다 보낸 나는 작년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항암과 방사선치료가 뒤를 이었다. 특히 항암은 탈모와 구내염과 부종 등의 온갖 부작용을 가져왔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식욕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식구들은 나에게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어떤 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해주었던 만둣국 생각이 간절했다. 친정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아픈 딸을 위해 손목이 시큰거려도 김치를 종종 썰어 면포에 넣고 작은 체구로 온힘을 다해 김치를 짜서 만둣국을 끓여주었을 것이다. 그 만둣국을 한번만 더 먹을 수 있다면 유방암도 거뜬히 이겨낼 것만 같은데.......

  지금 나는 IT강국답게 1분 만에 서울시내 유명한 만두집을 검색하거나 시선 끄는 네이밍으로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브랜드만두를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것은 어린 시절 단란했던 가족의 따뜻한 분위기와 왁자지껄한 대화, 엄마의 손맛이 담긴 뜨거운 그리움 아닐까.


  요즘의 겨울보다 훨씬 추웠던 팔십 대의 어느 겨울날 우리 식구들은 만두소를 가득 담은 큰솥에 숟가락을 하나 꽂아놓고는 빙 둘러앉아 그 숟가락으로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만두를 빚었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만두피 위에 소를 한 수저 올려 담고는 반달 모양으로 접어 속이 빠져나가지 않게 손가락으로 다독거리면서 가장자리를 엄지와 검지로 꼭꼭 눌러가다가 양끝을 맞닿게 붙여 하나씩 만들어가던 만두, 그 말랑말랑한 촉감이 내가 잃은 가슴 같아 더 그리워지는 오늘. 그 만두를 밀가루 뿌려놓은 쟁반에 올려놓으면, 우리 막내딸이 만두는 제일 예쁘게 잘 만들어, 하며 칭찬해주셨던 엄마. 오늘따라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그때 먹었던 엄마표 김치만둣국이 간절하게 먹고 싶다.      



김장김치로 만든 가슴 뜨끈한 만둣국 한 그릇 by 희망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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