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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Feb 06. 2023

내 일기가 왜 책이 되어야 할까?

나의 첫 에세이 상담소① 사랑을 찾아 '황혼이혼'을 선택한 그녀


그녀를 브런치에서 처음 봤다. '황혼 이혼'에 대해 쓴 글을 통해. 30년 가까이 부부로 지냈고,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글 한 편이 끝나면 다음 글을 읽고, 또 그다음 글을 열어서 읽으며 그녀가 써놓은 이야기를 거의 다 읽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었지만, 마음은 풍족하지 못하던 결혼 생활이었던 듯했다. 다 읽은 뒤 그녀를 내 멋대로 판단했다. 



‘남편과 마음을 나누며, 충만한 사랑 속에서 살고 싶으셨구나.'



우리 부모님, 시부모님을 비롯해 내 주변의 오래 산 부부들을 떠올렸다. 하나 같이 부럽지 않았다. 사랑을 주고받는 게 결혼생활이라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부부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어 보였다. 한국인 중년 부부가 해외여행에서 손잡고 다니면 그들은 사실 부부가 아니라 불륜이라던 농담이 떠올랐다. 어쩌다 '부부의 사랑'이 이토록 비현실적인 꿈이 되었을까.  



브런치에 쓰인 글들은 그녀의 일기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솔직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체 공개할 수 있는 당당함이 부러웠다. 글을 쓸 때마다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그럴듯하고 멋있는 장면만 골라 담는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녀의 글에서 즐거움과 해방감이 느껴졌다. 노트북 화면 너머로 입가에 미소를 띠고 신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항상 햇살이 비추던 그녀의 글에서 먹구름이 감지된 건 최근이었다. ‘책 쓰기’에 도전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는 내용이 자주 올라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처음은 어렵지만 특히 내 이름을 걸고 첫 책을 쓰는 건 난이도 상위에 오를만한 일이니까. 



‘저도 첫 책을 쓸 때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 기회 되면 한번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숨은 구독자였던 내가 처음 댓글을 달았다. 혼자서 내적인 친밀감을 MAX까지 끌어올려놨던 탓에 생뚱맞게도 ‘만나자’고 첫 댓글을 단거였다. 시원시원한 글솜씨만큼 거침없이, 그녀는 '좋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지도앱을 켜고 그녀가 말한 곳을 도착지로 설정했다.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가까운 건물이었다. 필라테스 스튜디오와 수제 케이크 전문점을 지나니 프랑스풍으로 꾸며진 상담실이 나왔다. 그녀는 개인 상담실을 운영하는 상담사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사진으로 봐서 눈에 익은 그녀가 웃으면서 인사했다. 50대 후반인 그녀가 스무 살 어린 나보다 훨씬 윤기 있고 촉촉해 보였다. 내 입장에서야 오랫동안 그녀의 글을 읽어왔던 터라 거리낌이 없었지만, 오늘 처음 나의 존재를 알게 된 그녀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만남에도 오래 만난 친구인 것처럼 별다른 스몰토크 없이 본론으로 직행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도 물어보고, 아쉬웠던 점도 솔직하게 피드백했다. 분명한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시면 좋겠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우셨어요? 어떻게 이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글만 솔직하게 쓰는 게 아니라, 반응도 거리낌 없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칭찬을 이어갔다. 

“제가 글쓰기 강의 많이 들어봤는데 진짜 설명 잘하시네요.”



별거 아니라며 손사래 쳤지만, 칭찬의 마법 탓인지 으쓱해져서 예상 시간을 훌쩍 넘어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실 그녀의 글만 읽었을 뿐, 어떤 피드백을 한다거나 제안을 드려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고민을 들어드리고 본인이 마음속에 갖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한 해답에 작은 불빛만 비춰줬을 뿐이었다. 



“왜 책을 쓰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모범답안을 준비한 것처럼 또박또박 대답했다. “사람들은 황혼이혼에 대해 관심도 많지만 거부감도 상당하다”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라고 했다. 자신의 경험으로 누군가가 용기를 얻길 바라시는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브런치나 블로그에 써도 될 텐데 왜 하필 책으로까지 출간하고 싶으신가요?” 

이번에는 내가 측면을 찔렀나 보다. 그녀는 처음보다 오래 고민했다. 

“그러게요.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방금 희망을 주고 싶다고 하셨죠. 저도 처음 책을 쓸 때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암을 경험했으니 나처럼 괴로운 사람들을 위해 희망을 줘야지. 그런 마음으로 책을 낼 결심을 했어요. 그랬더니 자꾸 교훈을 주려 하게 되고, 글에서 멋을 부리더라고요. 내가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희망은 내가 작정하고 준다고 해서 전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희망을 느끼는 건 독자들의 몫일 뿐이죠.” 



처음보다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네요.” 

중얼거리던 그녀는 미간에 인상을 쓰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저는 선생님의 글을 읽고 꼭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우리는 ‘엄마의 희생’으로 자란다고들 해요. 당연히 좋은 엄마는 자식에게 헌신하는 엄마고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황혼이혼을 하고 자신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찾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스스로의 행복을 선택하면 안 되나?’ 하는 물음표가 생기더라고요. 


그것에 대한 답을 책으로 써주시면 어떨까요? 희망을 준다기보다는 내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고, 여러 엄마 중에 한 명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나를 팔로우한 사람들이 보는 SNS에도 글을 쓸 수 있다. 쓰려고만 하면 쓸 수 있는 곳이 무궁무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책으로까지 출판하려고 하느냐. 그에 대한 답이 있어야만 길고 지루한 책 쓰기의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게 된다고 믿는다. 한마디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의하면 그녀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책을 내겠다고 결심하던 때를 떠올렸다. 암을 경험하면서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려고 끄적이던 글을 출판하고 싶었던 건 울분 때문이었다. “암에 걸렸다더니 암환자 같지 않다”며 놀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났다. 도대체 암환자 같은 건 뭐지? 왜 암에 걸리면 모두 죽어가고 있다고만 생각하지? 환자는 아프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보며 사는 사람인데, 이렇게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왜 돌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지 분노가 밀려왔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환우들이 그러할 거라고 믿었다. 



물론 암환자를 대변한다는 거창한 목표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다만 환우들이 내 마음을 공감해 주면 힘이 될 것 같았고, 일반인들은 책을 읽고 암환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랐다. 돌이켜보면 그게 바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함이었다. 비록 전 국민의 절반이 읽은 대단한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내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최소한 환자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을 테니까. 



황혼이혼을 경험한 그녀가 책을 낸다 해도 ‘헌신적인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편견을 깨부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작은 금이 가게 할 수는 있다. 자신의 행복을 뒷전에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에세이의 역할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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