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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Feb 12. 2023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감각

봄이 오긴 하려나 봐



이불을 걷어차고 나오려면 각오가 필요한 아침, 신문 1면을 보고 입춘이란 걸 알았다. 

“입춘? 입춘이라고?” 



입춘이라는 말에 한 번도 ‘그럴 때가 됐지’라고 수긍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추운데 웬 봄타령? 절기는 음력이라 요즘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곤 했다.



“엄마, 오늘부터 봄이라는 거지?”

눈만 빼꼼 뜨고선 거실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물었다. 



“응, 뭐 그런가 봐. 오늘 입춘이래.”

시큰둥한 내 반응에 아이도 다시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그때쯤인 것 같다. 봄이 오는 증거를 찾기 시작하는 게. ‘이게 무슨 봄이냐’고 해놓고선 입춘이란 말을 듣고 나면 ‘역시 봄이 오고 있다’고 설득하고 싶어 진다. 우리는 경쟁하듯 부지런히 봄의 낌새를 찾는다. 



매일 ‘봄이 오긴 하려나 봐 ____인 걸 보니.’의 형식으로 문장을 짓는다. 봄이 오긴 하려나 봐, 6시에도 컴컴하지 않은 걸 보니. 봄이 오긴 하려나 봐, 밤에 코트만 입고도 다닐만한 거 보니. 봄이 오긴 하려나 봐, 나무에 자그마한 꽃망울이 달린 걸 보니. 한 명이 찾으면 나머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게, 그러게 하며 맞장구를 친다. 



지루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건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는 감각이다. 입춘이라고 해서 당장 그날부터 포근한 바람이 분 적은 없다. 입춘이란 말은 ‘오늘부터 봄입니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이제부터 봄이 오는 변화를 느껴보세요’라는 안내였는지도 모른다. 



길에서, 하늘에서, 나무 끝에서, 느끼는 만큼 봄이 시작된다. 꽃이 활짝 피고 나서야 봄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봄은 고작 열흘 남짓이다. 하지만 입춘을 신호로 봄을 감각하는 사람에게는 봄이 겨울만큼 길다. 



괴로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지나가고 있다’는 감각이 아닐까. 좋아지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 달라지고 있다. 그런 증거들을 모아서 추운 시기가 지나가고 있음을 자신에게 알려야 한다. 이미 봄이 온 줄도 모른 채 그저 웅크려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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