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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Feb 19. 2023

엄마의 정보력보다 중요한 건 연기력?!

영재교육원에 합격한 아이의 비밀




당연히 떨어질 줄 알고 기대하지 않았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오늘이 며칠이냐"고 묻던 아이가 "어제 영재원 발표날이었네?" 했다.




먹던 밥을 마저 다 먹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정리하고 나서야 휴대폰을 가져왔다. 합격했으면 문자로 알려줬을 텐데, 불합격인가 보다 생각하며. GED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아이는 벌써 방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축하합니다. 최종합격하였습니다.'



 


그럴 리가. 노트북을 꺼냈다. 다시 똑같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로그인하고 나니 똑같은 문구가 보였다. 그제야 믿을 수 있었다. 아이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다.





아이는 '우와' 하고 외치며 두 번 콩콩 뛰더니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에게 이 기쁨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인스타그램 앱을 켜서 24시간 후면 사라질 스토리에 올렸다. 겸손, 겸손은 힘들다.







"어머 영재 어머님, 축하드려요."


몇 안 되는 인스타 팔로워 중에 그나마 몇 안 되는 '실친'이 아침에 올린 스토리를 본 모양이었다. 발표 화면을 캡처해서 자랑했으면서 막상 축하 전화에는 부끄러워졌다.


"아이 참, 영재는 무슨. 그냥 주말에 모여서 같이 과학 배우는 거래."





그래도 영재원인데, 주변에서는 영재원 대비 학원도 보내던데, 합격한 비결이 있을 것 아니냐며 자꾸 물었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아이를 보며 영재가 아닐까 설레었던 순간보다 발달에 맞게 자라고 있는지 걱정했던 시간이 더 길었다. 남들보다 말도 느렸고, 일찍 한글을 뗀 것도 아니었.





부지런해지지 않으려 했다. 아이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렸다. 일부러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과학 전집을 사주지 않았다. 과학책은 이미 답이 다 나와있는 정답지 같았다. 구름이 왜 생기고, 구름마다 이름은 어떻게 다른지 미리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오늘 봤던 하늘은 왜 어제와 색이 다른지, 솜사탕 같던 구름이 왜 누가 뜯어먹은 것처럼 흩어졌는지 아이랑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매번 똑같은 모양으로 나뭇잎을 그리는 아이를 데리고 일부러 산에 갔던 적도 있었다.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누가 더 다양한 나뭇잎을 많이 모으나 내기했다. 집에 돌아와 하얀 도화지에 각자 모은 나뭇잎을 붙여놓고 따라 그렸다. 한참 지나 도서관에서 나무에 대한 책을 본 아이가 기쁜 표정으로 달려왔다.





"엄마, 강아지풀 있잖아. 그게 외떡잎식물이래. 이름이 신기하지? 쌍떡잎식물도 있어. 그건 뭐냐면~~"





아이가 손으로 책을 짚어가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동안, 나는 생전 처음 듣는 얘기처신기해했다. '어머, 어머, 그렇구나' 맞장구쳐 가면서. 혼신의 연기 탓에 아이는 철석같이 믿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엄마를 가르치는 게 재밌어서 또 가르쳐줄 만한 걸 배워왔다.








아이에게 무얼 가르쳐야 할까 불안하고, 적기를 놓친 건 아닌지 초조해지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에게 자꾸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해했어? 엄마가 말한 거 알아 들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시 또 틀린 답을 내놨다. 하지만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 줄 때만큼은 의심이 들지 않았다. 자기가 이해한 만큼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를 가르치면 비로소 불안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아이한테 가르치도록 했다. 대단한 의도가 있어서라기 보단 그저 내 마음이 편하려고 그랬다.





3월부터 아이가 영재교육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나는 또 많은 것을 모른 척해다. '어머, 어머 그렇구나!' 연기하면서.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문과인 엄마가 진짜 모르던 걸 아이가 가르쳐주는 시기 것이다. 그때까지 정보력보다는 연기력이 뛰어난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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