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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Feb 06. 2023

"내가 꼰대 같냐?"라고 묻는 아빠에게

올챙이 적을 기억하는 개구리 되기



아이와 둘이서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남자의 대화에 귀가 쏠렸다. 대화가 자꾸만 우리 테이블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열심히 음식을 입에 넣느라 말이 없었고, 두 남자는 목소리가 너무 컸다.



식사를 한 지 삼십 분 만에 그들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자녀들은 몇 살인지, 요즘 하는 일은 어떤지 다 알게 되었다.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샤브샤브를 뒤적이는 두 사람의 안줏거리는 ‘꼰대’였다.



“형님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얼마 전에 우리 애들한테 물어봤더니 아빠는 꼰대 아니라고 하던데.”



그걸 대놓고 물어보는 게 꼰대라고 대신 답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잘 익은 배추와 함께 삼켰다. 아이들에게 ‘꼰대 아님’을 인정받은 아버지는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며 활짝 웃었다. 그 얘길 가만히 듣고 있던 ‘형님’이 되물었다.



“너는 꼰대가 뭐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 질문에 아빠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기에 꼰대라는 글자에 숨을 불어넣으면 우리 아빠가 된다. 아빠는 무조건 남을 가르치려 한다. 본인의 방식이 무조건 맞으며, 자신이 모르는 게 없고, 당연히 틀릴 리 없다. 남들이 나보다 모른다는 전제하에 가르치듯 말한다. 문제는 이 가르침을 아무도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BTS 슈가와 개그맨 신동엽이 함께 등장한 토크쇼를 봤다. 슈가가 진행하는 이 콘텐츠는 손님이 원하는 술을 가져와 함께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콘셉트이었다. 신동엽이 워낙 주당이라고 알려져서 얼마나 좋은 술을 마실까 궁금했다. 그가 가져온 술은 비싼 화이트 와인이었다.



신동엽은 먼저 술을 따르기 위해 와인병을 잡았다. 슈가는 얼른 두 손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신동엽은 “괜찮아, 편하게.”라며 다독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도 몰랐는데 와인을 두 손으로 받으면 따르는 사람도 불편해지니까 편안하게 받아도 된대”



주당인 그는 꽤 오래전부터 이 매너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와인을 잘 모르는 후배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무엇보다 ‘아, 나만 몰랐나?’ 창피하지 않도록, ‘나도 몰랐는데’라며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에서 배려가 느껴졌다. ‘너 몰랐지?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게’라는 식의 훈계는 유식함을 자랑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지만, ‘나도 몰랐는데’라는 말로 시작하니 다정함이 느껴졌다.





“너는 꼰대가 뭐라고 생각하니?”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상대를 궁금해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 답하겠다. 어쩌면 꼰대는 올챙이 적을 잊은 개구리가 아닐까?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꼰대인 건, 아마 자식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다 안다고, 그렇게 오래 살았으니 모를 리 없다고 확신해서가 아닐까. 나아가 자식들에게 ‘꼰대’ 대신 ‘친구’로 남으려면 아버지들이 자신의 올챙이 적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실수하고, 실패했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아빠가 이 글을 보시면 분명 너나 잘하라고 하실 거다. ‘내가 너희 키울 때는 말이야’라고 하시면서. 나도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쩍 잔소리가 길어졌다. '경계선 꼰대'랄까. 조만간 아이에게 "너 엄마가 꼰대 같니?"라고 대놓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이와 부대낄 시간이 길어진 겨울 방학에라도 아이에게 '순수한 질문'을 해야겠다. 넘겨짚지 말고 속단하지 말고, 눈 맞추며 물어봐야겠다. 아이를 좀 더 낯설게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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