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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Mar 29. 2023

그림자가 나를 앞장서지 않도록




지난겨울 국립암센터에 강의를 하러 갔다.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참가자는 세 명뿐이었다. 무명작가가 하는 강의라 별로 관심이 없겠거니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애써 침착한 척하며 준비한 PPT를 확인하는데, 참가자 한 명이 내가 쓴 책을 들고 다가왔다.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오지에서 친한 친구를 만나면 이렇게 반가울까?




“작가님, 팬이에요. 사인해 주세요.”




아마 참가자가 백 명쯤 있었다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세 명 중 한 명이 사인을 받으러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강의를 준비하던 관계자분들도 놀란 듯 바라봤다. 당황해서 삐뚤빼뚤한 글씨로 몇 마디 적고는 다시 책을 돌려줬다. 그녀는 소중히 책을 안고 자리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어깨가 활짝 펴졌다.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오늘은 ‘나를 돌보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함께 글을 써볼 거예요. 저는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할 때, ‘나라도 내 마음을 알아줘야겠다’ 싶어서 글을 썼어요. 저도 2015년 혈액암 판정을 받고, 3년 동안 항암치료를 했던 암 경험자입니다.”




처음 암 환우를 대상으로 강의할 땐, 끝나고 나서 며칠씩 잠을 설쳤다. 아팠던 기억도 나고, 다시 암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밀려왔다. 강의할 때 자꾸 우는 것도 문제였다. 환우분들이 쓴 글을 낭독하실 때면 안타까운 마음에 북받치곤 했다. 4회로 예정된 강의가 코로나로 중단됐을 때, 내심 기뻤다. 괴로워서 도저히 계속할 엄두가 나지 않던 참이었다.





암을 겪을 때 누가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게 싫었다. 암환자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인데, 왜 결말을 아는 사람들처럼 호들갑을 떠는지. 정작 몸이 회복되고 나니 내가 환우분들을 동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 1년이 지나고 다시 암 환우분들 앞에 설 결심을 했다. "이제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서도 “누워있고만 싶지 않아 글쓰기를 배우러 왔다”고 말하는 분을, “비록 몸은 괴롭지만, 그래도 내 삶에 빛나는 것들을 기억하고 싶다”는 분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동정한단 말인가.




“저는 암이 그림자라고 생각해요. 그림자는 내가 애써도 떼어지지 않아요. 암에서 회복되었지만,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있습니다. 그래도 그림자가 우리를 앞장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태양을 바라보는 한, 그림자는 늘 우리 뒤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아프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가장 밝은 곳을 바라보시는 여러분 앞으로 그림자가 앞지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에게 사인을 받았던 팬이 인스타그램으로 그날의 감상을 공유해 주셨다. 책에 적었던 응원의 메시지와 강의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 아래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토해내고 그것이 하나하나 쌓여 나를 튼튼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적혀있었다. 나는 ‘좋아요’를 누르고 몇 마디 적었다. 그날 책을 들고 사인받으러 와주셔서 감사한데, 충분히 표현을 못 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인스타그램으로 일주일에 한 번쯤 일상을 기록하던 그녀의 계정에 몇 주 동안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가장 최근 사진에 다시 댓글을 달았다.




“잘 지내시나요? 그때 정말 기뻤는데, 그런 일이 처음이라서 제대로 표현 못 한 게 아직도 후회돼요. 다음에 뵐 때는 더 반갑게 인사할게요. 꼭 다시 뵈어요.”




댓글이 달리지 않고 또 며칠이 지났을까. 낯선 아이디로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친구라는 사람이 내 댓글을 보고 소식을 전한다며, 그녀가 먼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골수 이식 후 얼룩져버린 피부, 독한 약 때문에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린 눈, 말랐다는 말론 부족할 정도로 살갗밖에 남지 않은 그녀는 10분에 한 번쯤 안약을 넣어가면서도 강의를 듣고, 나무젓가락처럼 얇아진 손가락으로 펜을 꼭 쥐었으며, 괴로운 치료를 앞두고도 강의를 들었다. 그녀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떠나던 순간까지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이었을지 알기에, 나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그녀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나 역시 생의 끝자락에서 그녀처럼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좋아하면서, 빛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림자가 나를 앞장서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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