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4, 2017
하코다테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진회색을 띠는 것을 보아 온종일 내릴 모양이었다. 이런 날 아키타에 있었다면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단골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홀로 다붓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머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된 여행지에서, 그것도 혼자가 아닌 무리로 떠나온 여행에서 그런 여유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무엇보다 이 여행을 계획한 N은 궂은 날씨를 핑계로 짜 놓은 일정을 뒤집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루하루를 되는 대로 살아가는 나와는 달리 인생 전체를 설계해놓은 듯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신기하고 그래서 일정 간격 이상으로는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사람. N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N은 예정대로 우리를 첫 번째 목적지인 트라피스치누 수도원으로 안내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 수도원인 트라피스치누 수도원은 1898년 프랑스에서 온 수녀들이 세웠다고 한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수녀들이 생활하고 있어 내부는 볼 수 없지만, 성모 마리아 상과 잔다르크 상이 서 있는 앞마당과 건물의 외부는 관광객들에게 공개돼 있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 수도원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보행에 꼭 필요한 부분만 제설이 되어 있어 앞마당을 제외한 다른 건물은 둘러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안타깝게 되었다며 아쉬워할 때, 여행 단장 F만이 실망한 기색 하나 없이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 찍어야 돼, 사진!(写真撮らねばよ、写真!)"
세상 사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붙임성을 지닌 F는 때마침 마리아 상 앞을 지나가는 다른 관광객의 소매를 거침없이 붙잡으며 우리 일행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청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일본어를 전혀 할 수 없는 한국인이었는데, 내가 통역하기도 전에 F의 요청을 알아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걸 눈치챈 F가 그들 손에 카메라부터 덥석 쥐어주었기 때문이다. 부단장인 I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역시 누님답네(さすが姉さんだな)"하고 말했다. 다음 목적지인 고료카쿠 성에서도,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하코다테야마에서도 비슷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무리 중 몇몇이 날도 궂은데 사진은 이만하면 됐다고 말했지만, F는 여행에선 어쨌든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나는 내 인생의 곱절을 산 F가 하는 말이라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몇 번이고 피사체가 되었다. F가 그렇게까지 사진에 집착한 진짜 이유는 모든 여행이 끝난 뒤에야 밝혀졌다. 그가 모두에게 여행 사진을 모아 만든 사진집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여행 중 사진을 너무 많이 찍는다며 투덜댄 사람들은 이럴 생각이었으면 진작 말해주지 그랬느냐며 머쓱해했다.
그가 붙인 사진집의 제목은 '방랑의 11인 하코다테 기행(さすらいの11人 函館紀行)'이었다. 나는 제목 속에 나열된 단어 중에서도 '방랑(さすらい)'이라는 단어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사진집에 담긴 여행의 순간들과 F가 직접 쓴 유쾌한 문장들을 바라보면서, F가 우리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언젠가 희미해질 방랑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지금의 이 긴 방랑이 언제 끝날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사진을 많이 남겨둬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오랜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한다고 해도 사진만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