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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Sep 19. 2023

인턴 생활,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되어갑니다

병원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온상

병원과 감염병


내과 인턴 3주만에 나는 심한 호흡기 감염 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목이 붓고, 몸이 으슬으슬하고, 발작적으로 나오는 기침 덕에 밤새 콜이 없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스크를 열심히 끼고 손도 나름 열심히 씻었지만, 수면과 식사가 불량한 상태로 거대한 바이러스와 세균 폭탄 속에서 일하면서 면역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환자와 가장 가깝게 대면하고, 그들의 타액을 직접 만지는 인턴, 간호사, 조무사 선생님 같은 직업들이 어찌보면 가장 감염병에 취약한 존재들이다. 실제로 인턴을 먼저 마친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폐렴, 장염, 독감 등등 각종 감염병을 한 번씩 앓고 지나가며 입원 치료까지 해야 했던 친구들도 있었다. 코로나 때도 환자를 치료하다 옮은 의료진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결핵환자 방에 들어갈 때, N95마스크와 덧가운을 입고 들어가서 숨도 쉬기 힘든 상태로 라텍스 장갑을 낀 채로 더듬더듬 동맥 채혈을 해내야 했을 때, 후천선 면역 결핍(일명 에이즈) 환자의 혈액 샘플을 채취해야 했을 때, 대변에서 슈퍼 박테리아가 나오는 환자의 격리방에 들어갈 때,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들을 몰고 오는 환자들을 응급실에서 바로 마주해야 했을 때, B형 간염 보균자의 수술방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마음 속으로 오늘도 그 누구의 바늘에도 찔리지 않고, 마스크와 가운을 뚫고 바이러스와 세균이 침투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매일매일의 업무들을 수행해 내야 했다.

아직도 그 때의 비닐 가운과 라텍스 장갑의 감촉을 떠올리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남을 돌보고 살려야 하는 일만큼이나, 나를 지켜야 하는 일도 정말 중요하다.

모든 병원 식구들이 오늘도 무사하기만을 기도해본다.




인턴 생활과 통증


감염병 외에도 인턴들이 걸릴 수 있는 또 다른 병이 있었으니,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었다.

다들 허리, 어깨, 무릎, 손목, 어딘가 불편하고 아프기 시작했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거나 물리치료를 받아 보기도 하지만 그 때 뿐이다.


하루종일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이상하고 불편한 자세로 어시스트를 하거나 검사 진행을 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내 무릎도 점점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평소 바른 자세와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면 거뜬했을 수도 있으나, 공부한다는 핑계로 내 몸 돌보기를 그동안 소홀히 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그 작은 틈들이 인턴 생활 중 커다란 구멍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 운동을 해야만 했다.

응급실 인턴 시절, 밤샘 근무 후에 필라테스를 가는 스케쥴을 무리해서 강행 하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운동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학생 때 이렇게라도 운동을 해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꼭 겪어보기 전에는 심각성과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니 참 미련한 존재다. 

그래도 인턴 생활을 계기로 나는 운동을 조금 더 꾸준히 하게 되었으니, 꼭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턴 생활과 정신 건강


이 외에도 사실 불면증, 불안,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등 인턴생활을 하다보면 갖가지 정신 건강 문제에도 부딪히게 된다. 

너무 바쁜 일정에 나쁜 감정을 미처 해소할 틈도 없고,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오해와 분쟁이 쌓이고, 나를 지지해주는 친구나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는 생활. 그와중에 나의 마음을 지킬 줄 아는 능력을 시험 받는 시간이었다. 


과연 이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나? 

내 삶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 

꼭 필요한 것인가 ?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내가 성격이 더러워지면서까지 이 과정을 견뎌내야 하는가?


의심 없이 의사가 꿈이라고 달려왔지만, 힘든 과정 앞에서 여러가지 의문과 회의가 따라붙기도 한다. 결국은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며 사라졌다 돌아온 친구들도 간혹 있고, 인턴 생활을 그만 두고 밝은 얼굴로 행복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각자에게 맞는 길은 다르고, 각자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또한 실제로 부딪혀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도 없다.

그저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무사히 이 관문을 잘 통과하고, 어떠한 선택을 했든 우리 모두가 행복한 길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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