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현 Jan 10. 2023

낭랑 18세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정지혜

낭랑

朗朗 [밝을 낭, 명랑할 랑]


낭랑 18세라 그 당시에는 의미를 알았을까, 알았다 한들 생각이나 했을까. 그때 우리는 모두 가히 낭랑 18세였다. 밝고 명랑했던 고등학교 2학년의 그날 우리는 만났다. 남중을 지나 고1때도 남녀 각반이라 남자 친구들과 오랜 시간 지내왔는데 갑자기 남녀 합반이라니, 모두가 낯설어하는 분위기 속에서 유난히 빛나던 사람이 있었다. 


작고 까만 얼굴에 긴 생머리, 남학생들만큼이나 큰 키, 커다란 하트 볼펜을 들고 분홍색 고양이 담요를 걸치고 다니는 친구였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단연 그 생각은 나에게 한정된 감정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아채 버렸다.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18세의 소년·소녀들은 친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가가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그 친구는 사실 천방지축 말괄량이였다. 그냥 정말 낭랑 18세였다. 

많은 남학생의 관심을 받았던 여학생이었고, 시원한 성격은 항상 그녀를 빛나게 했다. 

그러나 나는 금방 친해지지 못했다. 뭐가 그리 어려웠고 어떤 게 그리 낯설어서 혼자 다가가지 못했을까. 


그 친구의 생일이 있던 4월의 어느 날 나는 동네빵집에 가서 피자 빵 두 개를 사서 등교를 했다. 그러나 학교에 도착해서 보니 그녀의 책상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 빈자리가 없었다. 과자부터 다양한 간식거리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서로서로 친해지기 시작했을 때 생일을 맞이하는 건  최고의 축복이다. 서로 친해지기 위해 다양한 선물 공세가 이어진다. 빵 두 개를 들고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그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 책상  구석에 빵을 살짝 올려뒀다. 말도 못 했다. 내가 준 거라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답답함이 지금도 치밀어 오른다. 바보. 그러나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서로서로 친해진 친구들 틈에 자연스레  그 친구와 나도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서로 별명을 부르며 엄청난 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고 놀려대며 괴롭힘을  일삼았던 그때를 떠올리면 학기 초 수줍음은 무슨 이중성인가 의문이 든다. 그때, 네 얼굴이 더 까맣다며 서로 놀려대던 우리는 낭랑 18세에 걸맞게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갔다. 


서울로, 경상남도로 각자 갈 길로. 타지에서의 힘든 대학 생활의 큰 힘이 되어준 친구이기도 하다. 가끔의  짧은 연락이 전부였지만 서로에게 위로였다. 거리는 많이 멀었지만 타지에 서의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다. 나 하나도 어려운 타지 생활에 서 내가 누굴 안쓰러워하고 있는지 그 친구가 안타까운 적도 많았다. 그 친구와의 연락을 오랜 시간이어가게 된 건 군대에서의 용기였다. 군인의 연락을 받아주는 일은 정말 귀찮지만 대단한 일이라는 걸 전역하 고 나서야 뼈저리게 아주 제대로 느꼈지만, 나도 군인 때는 일과 후에 전화기를 붙잡고 살았고 그 친구는 한결같이 전화를 받아줬고. 또 갑작스레 나온 휴가에도 마다하지 않고 나와 밥을 사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그런 친구였다. 그래서일까 계속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각자의 출발선에서 꿈을 이끌고 섰던 그때도 지금은 많이 지 치고 허물어졌지만, 서로의 꿈을 알고 있고 여전히 응원하며 꿈을 꾸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다. 군인 시절, 대학을 다니고 졸업을 하 고 힘든 타지생활에 많은 친구가 금세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둘 다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우물 안 개구리는 되기 싫어!’ 가끔은 생각하는 게 너무 비슷해서 이런 게 '진짜 친구인가 보다'라는 생각 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듬직하기도 하다. 


사실 그녀는 목소리가 정말 크고 특이하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놀릴 때면  공룡 같달까. 그래서 지금도 둘이 만나 떠들고 있으면 중간중간 서로 목소리를 낮추자고 말한다. 웃긴 일이다. 고등학교 그때처럼 여전히 서로 네 얼굴이 더 까맣다며 놀리고 별명을 소 리치는 모습을 보면 둘 다 여전히 어리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본인의 직업에 엄청난 뿌듯함을 느끼며 덩달아 나까지 설레게 하고, 또 정말 일할 때 아이들과 함께할 때 가장 멋있는 친구. 이런 친구가 있어요, 하고 자랑할 수 있는, 오랜 시간 서로의 많은 걸 지 켜본 소중한 친구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그녀지만 만날 때면 하루, 아니 일주일 정도의 고단함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단번에 잊게 해주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오늘도 머릿속을 울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장난 같은 잔소리를 하면서 웃어도, 너에게 나는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기에 여태 

타지에서 잘 살아가고 있어. 나 또한 너에게 좋은 자극으로 다가가서 에너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어. 

늘 서로에게 재미있는 친구로 기억되길,

매거진의 이전글 꽉 찬 밤하늘 별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