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조범준
대학을 아주 멀리 가게 되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동네에서 자라오다가 대학교는 집에서 4시간 이상 걸리는 곳으로 진학을 하게 됐다. 성격도 말투도 거칠고 드센 아이들이 있는 외딴섬에 떨어진 20살의 나는 여태껏 지내오던 학창 시절 때와 는 달리 말수가 줄어들었고 위축됐으며,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들어가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먼 곳에서 왔고, 말투도 다른 이도 저도 아닌 어 중간한 하나의 작은 점같이 느껴지던 나 자신이었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은 학과에 나포함 3명이었지만, 그 둘은 다른 반이었고 그저 윗동네에서 온 아이들 정도로만 기억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의 3개월은 정말 3년 같이 길었다.
그 정도로 몹시 어렵고 힘들었고 여러모로 지친 상태여서 도망치다시피 학기를 마무리하 자마다 군대를 가버렸다. 군대 시계도 움직이긴 했다. 2년이라는 시간은 나를 다시 복학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 데려다 놓고는 저울질하고 있었다. 쓰러트려 보던가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던가! 사실 복학을 하지 않을 생각은 하나도 없었고,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해 보자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 전역과 동시에 복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복학을 앞두고 있던 그해 여름,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준 비하는 동기가 연락이 왔다. 4인 1실을 써야 하는 기숙사 방을 함께 쓰자는 제의를 했는데 사실 어느 방에 가도 상관이 없었을뿐더러 그들도 낯선 사람보다야 얼굴이라도 아는 동기가 편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렇게 기숙사는 생각보다 금방 룸메이트 가 정해졌고 복학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1학기 때처럼 보내지 않으리라, 혼자 다녀도 당당하게 학식도 먹고 어깨 펴고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며 다시 돌아간 학교였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이틀 먼저 기숙사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적응을 시작했는데 도착한 다음 날 오전에 한 아저씨가 방에 들어왔다. 아저씨는 짐을 하나씩 가지고 들어오셨고 도와드리려고 했으나 우물쭈물 어떻게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커다란 컴퓨터 본 체를 가지고 오실 때 그제야 조금 도와드릴 수 있었다. 기숙사 방에 컴퓨 터를 통째로 가지고 오는 녀석이 누굴까 의문이 들던 순간이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물 하나를 주시며 아이가 아직 전역을 하지 않아 짐이 먼저 들어왔다고 다음에 기숙사 오면 친하게 잘 지내라고 말씀하시고는 방을 나가셨다. 혼자 있는 4인실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학기가 시작되고 컴퓨터의 주인공은 이틀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고,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기에 인사 또한 사치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자연스레 그렇게 룸메이트라는 이름 안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나에게 쉴 틈을 주고 싶지 않았고 일상을 굉장히 바쁘게 만 들었다. 학과 사무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편의점 아르바이 트를 가고 주말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갔고 학교에서 자격증을 준비하고 시험과 대회 준비도 하며 정말 빠듯한 일상을 이어갔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1학기 때와는 다르게 친구가 생겼고 함께 다니는 무리 가 생겼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숙사 룸메이트들과는 그냥 그저 같은 과 동기 그 이상이하도 아 니었다고 해도 무방한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학교는 조용해진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학교에는 시골의 정적만이 남아 스산한 바람 소리까지 귓가에 선명하게 맴돌았다. 집이 멀기도 했지만 자주 가는 게 썩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일찍 깨우쳤 던 나와 뭐 때문인지 늘 주말에도 남아 있던 룸메이트 녀석. 우리 둘은 몇 명 없는 학교 기숙사에 남아 그렇게 매번 주말을 함께 보내 게 되었다. 비슷하게 윗동네에서 멀리 여기까지 왔다는 그 하나의 공통점을 시작으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어쩌면 친구 그 비슷한 부분까지 도 달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2층 침대 위아래 각자 자리 잡고 떠들던 그때, 녀석은 진지했고 말이 많았으며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진중한 표정은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 또한 고이고이 간직해왔던 내 안의 이야기 들을 눈앞에 보여주었고 녀석은 솔직한 대답과 위로를 주었다. 말할 때마 다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모습이 참 천연덕스러웠고 과장된 제스처가 밉 지 않게 장난스러웠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주말뿐이었다.
적어도 당시 내 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다른 친구들이 돌아오면 행동도 말투도 너무나 거 칠고 우악스러워졌고 같은 녀석인지 의구심까지 들었다. 정말로.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이제는 기숙사마저 나와 살게 되어 녀석과는 더 이상 어떠한 작은 교류조차 오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없었다. 그냥 서로 쓱 쳐다보는 그 행동 정도 가 전부였다. 후에 몇 번의 접선이 있긴 했지만 만남이 유쾌하지는 않았고 내가 밀어내는 횟수가 많아졌다. 애초에 맞지 않는데 끄트머리만 살짝 걸쳐놓은 퍼즐 조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한테도 편했고. 그렇게 학교생활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마주치는 접 선조차 없어졌고 당연히 연락처도 지워지고 서로 진정한 남이 되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게 되어 다시 위로 올라왔고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 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 누구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초년생은 나 하나도 머릿속에 담아두기 버거우니까. 1년 정도 지났을까, 아주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고 하면 벌써냐고 묻겠지만 정말 조금의 여유가 생겼고 주 변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을 때, 녀석은 타이밍 좋게 내 앞에 나타났다. 다른 친구의 가게에서 약 2년 만에 만났던 우리는 오래간만에 마주 앉아 식사하게 되었는데, 나는 눈치를 보느라 바빴지만, 녀석은 그대로였다. 둘이 있던 그때처럼. 그 후에도 수차례 연락이 오고 만났고, 학생이 아닌 사회 인으로서 어쩌면 다시 한번 친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연락이 자연스레 끊겼고 또 이어지고를 반복하는 지금까지도. 나는 녀석이 여전히 어렵다. 생각이 비슷한 듯 다르고 늘 새로운 난제를 던지는 녀석이기에 앞으로도 어쩌면 너는 도대체 뭘까 조금의 의문을 가 지고 살 테지만 그래도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거 하나는 이제야 알겠다.
각자 침대에 누워 떠들던 그때, 수천 개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하늘로 쏘 아 올렸는데 그래도 외롭지 않게 함께 하던 네가 있어서 그 당시가 빛났어. 꽉 찬 밤하늘 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