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정재연
살면서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 해. 엄마가 자주 하셨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실행에 옮겨 주셨다. 아니 옮겨 주려 하셨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기 직전의 너무도 춥던 2009년의 겨울,
엄마는 시내에 있는 작은 기타 학원에 나를 보냈다. 전날 악기점에서 샀던 제법 비싸던 기타를 들고.
학원은 사무실과 교습실 몇 개가 전부였는데, 겨울이라 제일 큰 교습실 한 곳에 모두 모여 개인지도를 진행한다고 했고, 그곳엔 가운데 돌아가는 온풍기 하나가 전부였고 내가 갔을 때는 나 혼자라 너무 추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낯선 공기가 더 차게 다가와서 추웠던 것 같다. 금세 모여든 사람들, 일곱 명 남짓이었지만 사람들의 온기로 교습실은 금방 따듯해졌 다. 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다른 얘기지만 나는 약 2개월 동안 단 한 곡 도 완곡한 적이 없다. 그래 맞다, 놀러 다닌 것이다. 로망스는 초보 기타의 최고 곡이다. 다양한 코드를 금방 익힐 수 있고 쉽 지만, 꽤 명곡이기에 좋은 연주를 할 수가 있었다. 그날도 학원에 일찍 나 가 혼자 온풍기 앞에 앉아 로망스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또래의 남자아이 하나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양옆으로 작게 찢어진 눈, 키는 적당히 컸지만 마른 몸, 나에게 비친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3초면 결정되는 게 첫인상이니까. 녀석은 나를 몇 번 흘깃거리고는 나갔고 그 후에 학원에 몇 차례 방문했지만 우리는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흔한 인 사조차도. 알찬 겨울 방학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학원을 그만두고 기타는 방구 석 어디에서 집안의 장식을 담당하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학기 초 옆 반에 중학교 때 친구가 있어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친구 옆에 기타 학원에서 봤던 그 녀석이 있었 다. 같은 학교에 왔구나, 교복을 크게 입었나 앙상한 몸에 교복이 무척 커 보였다. 대화는커녕 인사조차 없었다. 딱 그런 사이였다. 그저 왜 자꾸 마 주치는 거야 라는 생각은 몇 번 했던 것 같다. 2학년이 되었을 때, 새로운 교실과 새로운 아이들은 초반에 모두 눈치를 본다. 누구와 친해져야 하나 어떠한 말로 대화의 물꼬를 터볼까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고 있었는데 같은 반 교실에 그 녀석이 있었 다. 당시 나라면 분명 아 또 마주쳤네 하고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만남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그때야 살짝 흥미가 생겼나 보다. 나는 녀석에게 접근하여 괜히 시비도 걸어보고 말을 걸었다.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참 단순하다. 친하게 구니까 친구인 거라고, 누가 그랬다. 사실 내 가. 녀석은 말수가 적었다. 재미가 없었다. 누군가 무뚝뚝함이 무엇이냐 물으면 다른 거 할 거 없이 녀석을 눈앞에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조용한 녀석과 반대로 왁자지껄했던 내가 있었기에 우리는 순조롭 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녀석은 내가 가자고 하면 어디든 함께했고, 먹자고 하면 뭐든 함께 먹었으며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함께했다. 또 방학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날마다 같이 보냈고, 등하굣길은 항상 같이 움직였다. 늘 무뚝뚝했지만 친구는 닮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붙어 다니면 닮을 수밖에. 녀석은 갈수록 말수도 늘었고 웃음도 많아졌으며 밝아지고 있었다. 함께 하며 싸운 적도 무척 많았다. 사실 싸 웠다기보단 일방적으로 화내는 나와 묵묵히 들어주는 녀석의 관계였지만 사소한 거로 정말 많이 부딪혔다. 사실 나 혼자 충돌이었다. 나는 화가 나 면 무조건 뱉어내야 했다. 녀석을 불러내서 따발총처럼 할 말을 다 쏟아 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녀석은 그럴 때마다 침착했다. 묵묵히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하는 말은 항상 미안, 이였다.
수없이 반복되는 충돌이었지만 녀석은 그렇게 내 나쁜 성격을 받아주고 있었다.
고3이 되고 또 한 반이 되었다. 우리는 당연히 3학년에도 모든 걸 함께 했는데,
대학교를 정해야 하는 그, 시점이 되었을 때, 모두가 예 민했고 아팠을 그때, 나는 녀석을 드디어 터뜨렸다.
부풀고 부풀어진 풍선 이 빵 터진 것이다. 뭐가 불만이었을까 나는 또 시비를 걸었고 녀석은 교실
칠판 앞에서 의자를 집어 들고 화를 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놀란 건 나뿐이 아녔다.
친구들은 그 얌전하던 애가 의자까지 들고 화를 내다니. 혀를 내둘렀다.
그 후 나는 사과조차 할 수 없었다. 무서움과 미안함이 공 존했다. 3학년이 끝날 무렵, 마지막 현장학습이 있던 날 버스에서 우리는 각자 따 로 앉게 되었다. 어디를 가던 버스에서 함께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졸업하게 되었을 무렵, 힘겹게 내민 나의 사과를 녀석은 덥석 받았지만 어색 해진 사이가 무거웠고 학교를 굉장히 멀리 가게 되어 우리는 자연스레 멀 어졌다. 그러나 친구 사이는, 더군다나 정말 친한 우리 사이는 금방 붙을 수 있었다. 연락을 다시 하게 되고 고향에 오면 꼭 보고 싶어졌다. 고향에 가면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몸소 느끼게 해 준 녀석이다. 학창시절 둘이 노래방도 참 많이 갔는데, 그때 같 이 부르던 노래들은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정말 환상의 단짝이었 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연락을 가끔 나누는 사이가 되었어도, 그 당 시 서로에게 진짜 친구였음은 확실하다. 지금도 눈빛이 막 흐드러지도록 활짝 웃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딱 열여덟 살짜리 소년 같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즈음.
너는 내 고등학교 생활의 전부였어.
앞에서는 무뚝뚝해도 뒤에서는 세심하게 다 챙기고 있던 네 모습을 기억 해.
말 안 해도 서로 다 아는 사이였으니까.
정말 고마웠고 최고였어. 우리가 늘 함께 부르던 my best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