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 황혜정
시원한 바람을 머리에 한껏 묻히고 온 그녀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와 누구보다 밝게 인사를 했다.
걸어온 걸음걸음마다 에너지가 남아 자리가 빛나는 그녀였다. 작고 하얀 얼굴이 머리를 뒤로 넘겨 묶어 더 작아 보였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좋아하고 따르고 싶고, 존경하게 되는, 그녀는 나의 최고 선임이었다.
대학 졸업 후 동시에 입사, 그래도 꽤 알려진 큰 회사였고 서울로의 상경이라는 큰 부담감은 나를 옥죄기에
충분했다. 무작정 올라온 도시에서의 생활, 나는 커다란 스케치북을 펼쳐 나의 꿈을 적어내고 고이고이 접어 가슴속에 깊숙이 넣어 가지고 왔다. 당장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기에 시작하게 된 고시원에서의 생활, 고시원은 나의 스케치북을 펼치기에는 너무도 작은 공간이었다. 처음에만.
회사도 고시원도 평탄한 곳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고시원 1층에서 들어가기 싫어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울기도 수차례였다. 커다란 스케치북을 펼치기에 고시원이 너무 작다고 느꼈던 처음과 달리, 꿈을 적은 스케치북이 아주 작 아지고 해져서 고시원에 담을 만한 크기가 되어버렸다.
회사에서 첫 출근부터 함께 근무했던 그녀는 커다란 눈이 결의에 차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이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니폼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니까 최대한 깔끔하게 입 고 다니도록.” 첫 대화였다. 너무도 강력한 인상과 센 사투리 어투가 콕콕 박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첫인상과 같았다. 한결같이 일을 열심 히 했다. 또 그만큼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고 잘 해냈다. 본인의 업무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 쓰고 함께 가고자 함이 보이는 사람이었고, 그 함께에는 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감히 회사에 최적화된 로봇 같았다. 매뉴얼의 정석. 회사는 수단으로, 자신이 꿈꾸는 일은 목적으로 잘 분리해 나아가는 사람이었고 회사 일에 전념하는 그녀의 모 습은 정말 멋있었다. 나는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렸고, 꼼꼼하지 못하다는 점이 이력서에서는 그저 작은 단점으로 넘어갔다면 회사에서 업무를 배우는데 엄청난 악영향으로 작용을 했다. 놓치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사소한 업무조차 부딪히기 일쑤였다. 이렇게 일을 못 할 수가, 내가 나에게 감탄하는 그 지경까지 갔으니 말 다 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붙잡고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었다.
아니 0부터 100까지. 내가 어떠한 업무를 해내고 결과를 가져가면 강한 피드백과 함께 돌려보내기를 수차례,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를 자극하고 시켰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런 선임이 필요했던 나였다. 힘겹게 하나하나 겨우 해나가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업무에서는 누구보다 단호했고 자비도 없었다.
그러나 또 마냥 딱딱한 사람은 아녔다. 나와 같이 타지에서 올라와 혼자 생활을 하고 있어서 공통점이 많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어투와 억양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누나 같았달까. 내 많은 고민을 털어놓고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선임이 돼 어주었다.
고시원을 나와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얻게 된 첫 번째 집, 나는 그녀가 있는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출퇴근을 함께 하게 되었 고, 같이 들르던 단골 가게가 생기고 더욱더 친해질 수 있었다. 타지에 혼자 있는 나에게는 누나로서 엄청난 힘이 되어주던 그녀였다. 오랜 시간 알고 나니 허점도 하나둘 보이고, 너무나 편해졌다. 출근 시간 지하철을 타는 그 순간에도 나는 10분을 일찍 와서 기다리는데 그녀는 지하철이 들어오는 방송이 나올 때 늘 함께 등장했다. 풍성한 머리칼을 흔들며 초콜릿을 먹으면 재채기가 튀어나오는 이상한 특 이점이 있었고, 항상 그 뒤에는 호탕하게 고개를 넘기며 쾌활한 웃음을 보이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업무에서는 시간이 흘러도 늘 한결같았던 그녀였기에 선임과 후임으로서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후에 내가 이사를 하게 되고, 함께 일하던 회사에서도 퇴사하게 되었을 때, 퇴사를 앞두고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듣고 고민을 했었는지, 그래도 그런 사람이 함께했다는 것에 감사함을 크게 느꼈었다. 퇴사 하루 전날, 나는 손편지와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선임의 락커에 넣어두고 퇴근을 했고, 다음날 그녀 또한 손편지와 선물을 함께 주었는데,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녀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사무실에서 많은 직원이 있었음에도 아쉬움의 눈물을 보였 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을 테지. 얼마나 괘씸했던 적이 많았을까, 이 만큼 끌고 오는 동안 못 따라갔고 마땅히 내가 3년간 이루고 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미안함이 컸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녀의 편지를 보고 얼마나 오열을 했는지, 아니 사실 사람이 많아서 눈물을 꾹꾹 찍어내기 바빴지만, 정말 슬펐다. 그녀의 선물 중 하나는 텀블러였는데 평소 좋아하던 커다란 곰돌이가 그 려진 텀블러였다. 텀블러에 곰돌이가 본인이니 어디서든 지켜보겠다고,
일 열심히 하라고 적힌 편지에 피식하기도 했다. 정말 후에 가는 회사에 꼭 들고 가기도 했다.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 그 첫날부터 정말 딱 3년의 마지막 날까지 선임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위에서 끌어 주셨음에 내가 버티고 조금이나마 진전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일적으로 너무나 완벽해 배우고 싶고 따라가고 싶었고, 사적으로는 또 얼마나 편했던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과 고마 움이다. 내가 퇴사하고 후에 그녀는 본인의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게 되었는데, 같이 일하고 있지 않았는데도 얼마나 슬프던지 그러면서도 고향에 있는 곳으로 발령이라 그녀가 늘 바랬던 일이기에 좋기도 했다. 여러 모로. 그녀가 이사하기 마지막 날, 짐을 정리하며 듣고 있던 노래가 있다 고 추천해줬는데, 문득 생각나 들어봐야겠다. 남기고 떠나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경사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놀러 갈게요.
저는 여전히 제 자리에서 선임을 생각하며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