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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dayoo Aug 02. 2022

 "이모, 닭은 안 무서워!"

조카들의 반려동물 이야기

*나에겐 언니가 2명 그리고 조카가 5명 있다. 조카 1호부터 5호까지 각각의 색깔이 확실한 아이들.


조카 3호와 단둘이 놀이터를 가는 길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3년 반 만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기에 무더워도 놀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정말 무럭무럭 큰다는 걸 체감할 만큼 못 본 사이 조카 3호는 유아에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어른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참고로 조카 3호는 돈을 모아서 소를 사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으며, 집 마당에 호박을 직접 심어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호박잎을 자랑하며 먹는 사진을 보내줬다.


"이모는 키우고 싶은 동물 있어요?"

"음 글쎄. 나는 키울 자신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키워야 한다면 강아지!"

"아~ 그렇구나"

"3호는 키우고 싶은 동물 있어?"

"저는 닭이요!"

"어머 닭? 왜 닭이야?"

"닭은 알에서 부화시키면 되어요. 사지 않아도 되고요. 그리고 귀여워요."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더 어렸던 조카 1호와 3호는 알에서 병아리로 부화시킨 적이 있었다. 조카네(언니네) 집에 놀러 가 대문을 열면 바로 내 손을 잡고 병아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어미새가 아기새를 보듯, 사랑스럽다는 듯 병아리들을 보여주었다. 점점 병아리가 커지며 닭이 되었고, 더 이상 아파트였던 집에서 키울 수는 없었다. 결국 형부는 우리 집(조카의 할머니 할아버지 집) 뒷 밭 나무 아래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뒷 밭은 집 뒷길로 조금 언덕을 올라가야 해서 아이들이 가기에 쉬운 길이 아니었는데도 이틀에 한 번은 집에 와서 닭을 살피고 갔다. 뒷 밭과는 거리가 멀어 그곳에 20년 가까이 살면서 2~3번 정도 뒷 밭을 갔던 나도, 귀여운 닭을 보러 가길 조카는 원했다. 조카 1호는 몇 번이고 닭을 같이 보러 가자고 말했다.


"이모, 닭 보러 가자!"

"이모는 밭에 가는 사람이 아니야"

"왜?"

".... 그렇게 되었어. 그리고 닭도 무서워"

"닭은 안 무서워. 그리고 무서우면 내가 손잡아 줄게"


손을 잡아준다는 조카 1호는 할리우드 오버 액션을 할 때가 종종 있지만 현관에서 이모가 신발을 신기 편하게 신발의 방향을 돌려주고, 닭이 무섭다고 오버하는 이모에게 괜찮다며 손잡아주는 스윗가이다. 30살 가까이 차이 나는 덩치 큰 이모가 무섭다 하는데 손을 잡아준다니 안 갈 수 없었다.


용감하게 앞 서 뒷 밭 길을 헤치고 올라가며 나를 안내했고, 손잡고 들어간 닭장에서 닭들을 소개해줬다. 닭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도 잡은 손을 놓지 않으며 말했다. 귀여운 닭들을 보여줘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안 무섭지?"

"응 1호 덕분에 안 무서웠어. 고마워"

 



그리고 복날이었나. 조카 1, 2호도 와있었던 그날. 엄마가 삼계탕을 한가득 끓여 내오셨다. 갑자기 1호가 일어서더니 닭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닭들의 수를 세고 돌아왔다.  결국 1호의 오해였지만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랐을까 싶으면서 너무 귀여웠다.


한동안 닭이 낳은 넉넉한 알들로 풍족한 계란 프라이를 해 먹으며 지냈다. 1, 3호네가 외국에 잠깐 살게 되면서 닭들은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는 주변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이제 아이들도 제법 컸는데도 닭과 쌓은 애정 어린 추억들은 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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