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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성근 Oct 29. 2020

팀과 자신의 팔꿈치를 바꿨던
위대한 투수 이야기

22년 '삼성맨' 권오준을 보내며

20년 넘게 야구를 보면서 유독 고마운 선수들이 있다. 우승과 커리어, 연봉을 쫓는 선수보다는 아무래도 팀과 팬에 헌신하는 선수들이 고맙다. 야구팬들은 그런 선수의 플레이를 보며 감동을 하고 또다시 야구를 찾게 되는 거 같다. 나에게도 고마운 선수가 여럿 있지만, 그중 가장 멋진 남자 권오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22년 동안 입은 푸른 유니폼


80년생, 우리 나이로 41살인 권오준은 20살부터 22년 동안 삼성 유니폼만 입었다. 더 입으면 좋겠지만 이제 은퇴를 결정했다. 경쟁이 치열한 프로스포츠에서 22년 동안 선수생활을 하는 것도 대단하고, 한 팀의 유니폼만 입고 뛴 것도 대단한 일이다. 타자 쪽에서는 원클럽맨이 많지만 투수 쪽에서는 의외로 드물다. 하지만 아쉽게도 권오준의 영구결번의 가능성은 낮다. 삼성은 지금까지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까지 3명의 타자만 영구 결번됐다. 권오준은 불펜 투수라 숫자로 보여주는 성적적이 앞선 3명의 레전드 타자에 비해서는 조금 임팩트가 약하다. 삼성 팀 최초의 투수 영구결번은 권오준보다는 윤성환(프랜차이즈 최다승)이나 오승환(현역 최다 세이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그가 22년간 팀에 헌신한 자세, 후배들에게 미쳤던 영향력은 영구결번을 주기에 충분하다.



줄무늬 유니폼 시절의 권오준. 역동적인 투구폼을 가지고 있다







3번의 토미존 수술과 헌신


1. 프로 데뷔와 첫 번째 수술


권오준을 이야기하는데 수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선수생활 내내 그는 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권오준은 선린정보고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삼성에 입단한다. (당시 고등학교 동창이자 절친인 손시헌과 이종욱은 대학으로 진학한다. 친구들보다다 먼저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가장 오랫동안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당시 인천 출신이었던 권오준은 2차 드래프트에서 삼성의 지명을 받았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빠른 공의 구위가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많은 투수들이 그렇듯 권오준도 고등학교 때 많은 이닝 소화로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고 입단과 동시에 첫 번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수술)을 받는다.


[토미존 수술 : 손상된 팔꿈치 인대를 제거하고 다른 쪽의 힘줄을 이용해 교체해주는 수술. 실제 이 수술을 받은 투수 '토미 존'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현역 중에는 대표적으로 류현진과 오승환 등이 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재기의 가능성이 높지만 재활 과정이 길고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바로 군입대를 선택하는데, 상무나 경찰청(당시에는 없었음)이 아닌 해병대를 선택했다. 평소 마운드에서 터프한 권오준의 모습이 해병대와도 매우 잘 어울린다. 근데 실제로는 해병대 상근예비역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해병대는 해병대다. 그렇게 군복무를 마치고 1군 무대에 복귀한 권오준은 2004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가끔 야구 게임을 하다 보면 권오준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2004년으로 표시한 게임들이 있다. (권오준 2004년 : 153.1이닝 11승 5패 2세이브 7홀드 ERA3.23 WAR5.00)


군복무 직후, 20대 초반의 권오준


당시 김응룡 삼성 감독은 권오준의 구위를 믿고 선발의 기회를 줬고, 실제로 150이닝이나 소화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며 삼성의 미래로 떠올랐다. 지금으로는 선발 권오준이 어색하기만 하지만 선발투수 권오준은 상당히 안정감이 있었다. 이닝당 출루 허용률인 WHIP가 1.10에 불과했고, 153.1이닝 동안 내준 사사구는 49개에 불과했다. 그동안 삼진은 142개를 잡아냈다.



2. 전성기와 두 번째 수술


이쯤이면 선발로 쭉 가도 됐을 거 같은데, 당시 팀 사정으로 2005년에는 바로 보직을 마무리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오승환이 등장하면서 2005년 하반기, 200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필승조 역할을 맡게 된다. 권오준은 오승환 앞에 나오는 셋업맨이었고 전설의 'KO라인(권오준의 K + 오승환의 O)'이 만들어진다. KO라인은 정말 압도적이었고 상대 타자들을 힘으로 KO 시켰다. 당시 삼성은 든든한 두 명의 구원진을 바탕으로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권오준은 150km/h에 육박하는 뱀직구와 종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무시무시한 구위를 자랑했다. 이때 권총, 오준테이커 등 다양한 별명을 얻게 된다. (권오준 2005년 : 9승 1패 2세이브 32홀드(당시 KBO신기록) ERA1.69 WAR3.69)


그러나 다음 해부터는 어깨와 허리 등 곳곳에 부상이 연쇄적으로 찾아오면서 부진을 겪기 시작했다. 성적도 동반 하락했다. 그러던 2009년,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된다. 권오준은 두 번의 우승과 또 팔꿈치를 맞바꿨다.


두 번째 수술 이후 2010년에서 2013년까지 또 권오준은 삼성의 마운드를 지켰다. 이제 KO라인에서 정현욱, 권혁, 안지만까지 더해지면서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에서 삼성 마운드는 '극강'의 모습을 보였다. 권오준 개인으로 보면 2006년에 보여줬던 금강불괴의 보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2점대 평균자책점을 보여주며 KBO 역대 최강 불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권오준과 정현욱이 6~7회를 담당하는 중간계투였고, 안지만이 8회를 담당하는 셋업맨, 끝판왕 오승환은 9회를 지켰다. 당시 '안정권 KO' 또는 'JOKKA 라인' 등 다양하게 불렸던 이 다섯 명의 투수는 '7회까지 이기고 있는 경기 144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다시 설명하자면 오승환과 안지만 등에 비해서 불안했을 뿐이지 권오준이 당시 다른 팀에 있었다면 마무리를 맡았을 것이다. 이 기간 당연하게도 삼성은 리그를 제패했다. 어떤 타선도 이들을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권오준은 수술 후 또다시 팀을 정상으로 올려놨고 자신도 제2의 전성기를 달렸다. 


전설의 삼성 불펜진. 왼쪽부터 권오준, 오승환, 안지만, 정현욱 (없는 사람 : 권혁)




3. 삼성 왕조와 세 번째 수술


팀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이 기간 5차례 페넌트레이스 1위 달성,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등 대업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권오준은 2012년 시즌 중간부터 또다시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 2013년 권오준은 세 번째 수술대에 오른다. 악명 높은 토미존 수술을 세 번째 받는 최초의 선수가 된 것이다. 앞서 두 번의 수술에서 양쪽 손목의 인대를 떼어내서 썼는데, 이번에는 손목 인대가 없어 다리에서 인대를 떼어내 이식했다. 당시 여론은 긍정적이지 못했다. 나이가 이미 30대를 넘어섰고, 두 번도 아닌 세 번째 수술 이후에 팔꿈치를 비롯한 몸이 예전처럼 회복될 것인가에 대해서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믿었다. 비록 예전처럼 공을 뿌리진 못하더라도 권오준이라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권오준은 불사조처럼 다시 마운드로 돌아왔다. 불사조는 프로야구 원년 대스타 박철순의 별명이지만, 권오준에게도 불사조는 참 어울리는 별명이다. 세 번째 수술 후 2015년부터 지난 5년간 권오준의 투구는 매 순간이 감동이었다. 비록 구속은 예전보다 10km/h 이상 덜 나왔고, 예전처럼 압도적인 구위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권오준은 지난 5년간 삼성 마운드의 대들보 같은 존재로 버텨줬다. 명문구단 삼성은 2015년을 끝으로 몰랐다가. 원정 도박 파문으로 한국시리즈에서 힘 없이 물러났고, 팀의 중심이 됐던 선수들은 여러 이유로 팀을 떠났다. 중심 타자도, 감독도, 강력한 불펜도 모두 떠나고 남은 자리에는 권오준 혼자 있었다.


우리가 보는 건 마운드에서 그의 모습 뿐이다. 세 번의 수술과 도합 3~4년의 재활 기간 동안 권오준이 감내했을 고통을 우리는 보지 못했다. 마운드에서 승부사 기질이 돋보이는 선수인만큼 수술과 재활에서도 권오준은 잘 이겨냈고 팀에 돌아왔다. 그래서 참 이 선수에게 고맙다. 또 권오준은 말도 안 되는 혜자 계약으로 떠날 수 있는 순간에도 자의적으로 팀에 남았다. 2017년 시즌이 끝나고 2년 총액 6억 원에 FA 계약을 했는데, 삼성이 너무하다 싶었다. 물론 부상과 나이로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의 공을 생각하면 더 높은 금액을 제시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다. 권오준은 팔꿈치를 세 번이나 갈고서 얻은 첫 FA 계약을 마치고 이런 말을 했다. 


"삼성이 최우선이다. 영원한 삼성맨으로 남고 싶다"


22년, 참 오랫동안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내가 처음 야구를 보기 시작한 시점쯤 권오준은 삼성에 입단했고, 내일이면 정들었던 파란색 유니폼을 내려놓게 된다. '푸른 피의 에이스'로 불렸던 배영수가 삼성을 떠나 한화-두산을 떠돌며 은퇴를 했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권오준은 배영수처럼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무대를 가지진 못한다. 팀은 올해도 변변치 못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오준은 자신이 사랑했던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대구에서,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내일 멋지게 떠날 것이다. 정현욱이 LG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푸른색 유니폼을 입었던 것처럼 권오준도 코치로 돌아오길 바란다. 위대한 선수의 마지막을 너무나 축하하고, 팬으로 또 기자로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권오준과 정현욱. 아시아시리즈 결승을 앞두고 일본에서






권오준 투구폼 연속 동작



[번외 편 : 사이드암의 정석으로 남을 남자]


내가 기억할 투수 권오준은 다양하다. 팀을 사랑한 선수, 수염이 멋진 선수, 줄무늬가 잘 어울린 선수, 체인지업이 환상적인 선수, S급 불펜 투수. 또 한 가지는 '투구폼이 예쁜 선수'다. 사이드암의 정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말 멋진 폼을 가지고 있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상당히 역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양 발을 나란히 11자 모양으로 둔 채로 와이드업을 시작한다. 무릎을 최대한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하체를 최대한 많이 사용한다. 무게 중심을 뒤쪽으로 모았다가 앞쪽으로 무게중심을 부드럽게 옮긴다. 여기에서 끌어올린 왼쪽 다리가 최대한 포수 쪽으로 길게 내뻗으면서 공을 최대한 앞에서 뿌린다. 마지막에 상체를 숙여주면서 무게를 실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특히 권오준의 투구는 하체 중심의 투구를 하기 때문에 역동적이면서도 굉장히 안정적이다. 그래서 권오준은 제구가 상당히 좋았다. 사이드암 투구는 옆구리에서 공을 던지기 때문에 제구 잡기가 오버핸드 투구에 비해서 쉽지 않다. 하지만 권오준의 통산 볼넷 비율은 상당히 준수하다. 한마디로 밸런스가 잘 잡혀있고 군더더기가 없는 '정석'이다.


권오준 은퇴식 포스터



사진출처 : 동아일보, 삼성라이온즈, 일간스포츠,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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