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KIA 타이거즈의 윤석민이 한 토크쇼에서 근황을 전했다기에 그 영상을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토크쇼의 제목이'스톡킹'이었다. 범죄 행위를 뜻하는 영어 단어 '스토킹(stalking)'에 'ㄱ' 받침이 하나 들어간 단어가 프로그램의 제목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스포츠 + 토크 + 킹(sports talk king)'의 줄임말로 '스톡킹'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었다. 왜 이런 제목을 정한 걸까?
이 채널은 지난 6월 개설해 주로 프로 스포츠 전현직 선수들이 나와서 진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를 다룬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정용검 캐스터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심수창 해설위원이 진행을 맡았다. 콘텐츠만 놓고 보면 흠잡을 때가 없다. 캐스터와 선수들 입담을 듣다 보면 10~20분이 금방 간다. 경기 전후 인터뷰에서 듣기 힘든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구독자도 벌써 7만 명을 넘었고 콘텐츠도 정기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의도적으로 '스토킹'이라는 단어와 흡사한 줄임말을 만들어 냈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스토킹은 불법행위이며 범죄행위다. 소위 말하는 '어그로성' 제목이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줄임말이 범죄의 이름과 같다면 피했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은 유튜브나 SNS 등 뉴미디어서만 활동하는 크리에이터가 만든 것이 아니다. 기성 언론이 이런 제목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더 안타깝다.
"나만 불편해?"
채널 개설 이후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저 이름은 계속 쓰이고 있다. 나만 불편할 수 있겠다 싶어서 여성인권활동가와 범죄 전문가들에게 이 제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하나같이 돌아온 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였다.
김용민 씨 페이스북 게시글 캡처
여성활동가 A 씨는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줬다.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가 운영하는 개인 유튜브 채널 '김용민 TV'가 있다. 지난해 이 채널에서는 '버닝선대인'이란 제목의 코너를 만들었다. 경제전문가 선대인 씨가 진행을 맡은 코너로 주로 경제 이야기를 하는 코너인데, 진행자의 이름과 문제의 클럽 '버닝썬'의 이름을 합쳐서 코너 이름을 만들었다. 심지어 영상 도입부에 버닝썬 클럽 상표를 대놓고 드러내며 클럽 버닝썬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알렸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짧게 설명하자면, (지금은 사라진) 버닝썬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클럽으로 마약과 불법 성매매, 공권력 유착, 폭력, 불법촬영물 공유 등 온갖 불법 행위의 온상이었다. '버닝썬 게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사건은 컸는데, 승리와 정준영 등 연예인들의 불법 행위와 경찰 공무원들의 비리 행위까지 드러났다. 무슨 의도였을지 모르겠으나 경제 토크쇼에 굳이 버닝썬을 끌고 온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김용민 씨는 이후 코너 제목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버닝선대인'을 '주간 선대인'으로 바꾸고 공개 사과했다. 코너 출연자였던 선대인 소장도 코너명에 대해서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요즘 시대에 맞는 프로그램 제목일까요?"
활동가 A 씨는 "김용민 TV의 코너 제목과 '스톡킹'이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범죄를 직접 언급하거나 범죄 사건을 연상시키는 제목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런 제목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범죄 전문가 B 씨는 "프로그램 제목을 '성폭력' 또는 '보이스피싱' 등으로 짓는 사람은 없다. 90년대에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라는 유명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몰래카메라'는 범죄다. 당시는 아니었지만, 지금 시대의 이름으로 부적절하다"라며 "스톡킹 제작자들은 '스토킹'을 불법 행위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식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스토킹을 범죄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만, 메인 대문 사진에 걸었듯이 스토킹은 불법 행위, 즉 범죄다.
(기사가 아니라 개인 브런치이기 때문에 전화로 조언을 주신 전문가들의 이름을 비실명처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스토킹을 처벌하고 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장난 전화 등을 하거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는 행위 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스토킹은 관심과 애정, 순정 등으로 포장할 수 없다. 스토킹 피해자들은 잊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호소한다. 정신적, 심리적인 피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인 기피증, 스토킹 트라우마 등으로까지 이어져 피해자의 일상을 무너트리는 범죄 행위다. 스토킹은 강력범죄와 동반되는 경우도 많았다. 자신이 스토킹을 직접 겪지 않더라도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 피해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그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감했다. 연예인들, 특히 아이돌 가수들이 스토킹 피해를 많이 당해왔다. 최근에는 프로바둑기사 조혜연이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이 기사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했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스토킹은 피해자들의 목을 죄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토킹은 아주 심각한 범죄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스토킹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법도 '경범죄'로 스토킹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최대 처벌 수위가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고, 심지어 구두 경고 정도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가 받는 피해에 비해 너무 가벼운 처벌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토킹을 중범죄로 인식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의 목소리를 오래전부터 있었다. 1999년, 지난 15대 국회에서도 스토킹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스토킹 처벌법'이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20년 넘게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면서 스토킹은 여전히 경범죄로 남아있다. 발의는 됐으나 다른 주요 현안들에 밀려서 결국 21대 국회까지 미뤄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15건의 스토킹 범죄가 일어났다. 국회와 우리 사회, 엠스플의 제작진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스톡킹 제작진은 유튜브 채널에 이런 문구를 반복적 사용하며 채널을 홍보했다. "본격 스포츠 선수 입덕 방송" (입덕은 어떤 분야에 푹 빠져 마니아가 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제작진의 연출 의도는 스톡킹 채널을 통해 시청자들이 선수에 대해서 더 알고 푹 빠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스톡킹이란 이름은 영어 단어(Sports + Talk + King)의 단순한 합성어가 아니라 프로그램 기획 의도가 포함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스토킹 하듯 선수들에 대한 토크를 깊게 이어가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스토킹 범죄를 관심과 애정, 푹 빠지는 정도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방송 제작을 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채널 제목을 하루빨리 바꾸면 좋겠다. 우리나라 대표 스포츠채널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기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