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편안했던 공동체에서,
나와 흔들리기로 했다

흙에서 배운 삶 - 다시 길 위에 서다

by 찰시Chalsea



1. 평온했던 날들의 시작


2년 전부터 공동체 생활이 참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걱정이 없고, 갈등이 없고, 마음이 고요했다.
‘아, 인생이 이렇게도 평화로울 수 있구나.’
스스로가 신기했다.


photo_2025-05-25 18.46.38.jpeg 걷으려고 모아놓은 볏짚들


메타인지처럼 그 편안함을 인지하면서,

하루하루가 더 충만하게 느껴졌다.




2. 낯선 호기심이 스며들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무 평온했기에,

새로운 무언가가 슬며시 고개를 든 걸지도 모른다.


‘밭을 더 늘려볼까?’
‘새로운 작물은 어떨까?’


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은

기존 밭에 더 집중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한 발 물러나,

대신 농법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탄소순환농법,

비닐 사용을 줄이는 방식,

에덴농법…
흙과 함께 숨 쉬는 새로운 방식들을 탐구해 갔다.


photo_2025-05-25 18.46.41.jpeg




3. 마음의 지도를 흔든 만남


그러던 중, 국제 프로그램에서

뜻이 맞는 한 친구를 만났다.
가족과 사회의 기대를 뒤로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똘끼 있고, 유쾌하고, 나처럼 사회적 가치를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이었다.

국적이 달랐고, 모국어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달랐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처음으로 손을 잡았을 때, 거부감이 없었다.
나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워크숍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공동체에서의 생활은 그대로였지만,
내 마음은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IMG_20250525_190651_251_1.jpg





4. 흐름에 휩쓸리다


나는 내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채,
자기 검열 속에서 조심하는 척,

사실은 설렘에 휩쓸려 있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어떤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
이 관계는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 감정의 파도를 조용히 즐기고 있었다.


photo_2025-05-25 18.46.50.jpeg





5. 또 하나의 실험이 떠오르다


동시에 또 하나의 꿈이 자라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안에서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


공동체 안의 나도 좋았지만,

밖에서 살아가는 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전과 다르게 이건 도피가 아니라,

흥미를 끄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photo_2025-05-25 18.46.55.jpeg 새로 싹이 나는 호밀들




6. 도망치지 않는다


사실 그전까지는 공동체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지칠 때면 베이커리 일자리를 검색하거나,

외국 유기농장 체험을 뒤적거렸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망쳐도 해결되지 않는다’

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이제는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감각이 생겼다.


photo_2025-05-25 18.46.52.jpeg 좌, 우 모두 '마을길'



7. 길 위에 선 나,

새로운 밭을 바라보다


그래서 결심했다.
10년의 공동체 생활,

5년의 농사 경험으로 다져진 나로
세상이라는 새로운 밭에 씨앗을 뿌려보기로.


그 친구에게도 조심스레 말했다.
“공동체 밖으로 나가서 살아보려고.”
그가 말했다.
“그럼 같이 살자.”


그가 그의 문화에서는 한 번 같이 하면

일곱 생을 같이 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나도 마음이 확고했다. (실험 정신이었을까)
“그래.”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기로 했다.
이제 나는 두 문화가 어우러지는 삶 속에서
또 다른 밭을 일구려고 한다.


photo_2025-05-25 18.58.17.jpeg 새벽 안개가 걷히기 전의 마을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