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하는 훈훈한 연말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 가족같이 느껴졌던 오랜 연인과 크리스마스트리를 직접 사 와
그의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크리스마스, 그때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던 그 나무 향 때문인지,
크리스마스를 혼자서 보내게 되었다고 너무 비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쓸쓸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북적북적하게 보내는 것 같은 그 계획 속에,
상대적으로 무계획인 내 크리스마스가 조금은 휑하게 느껴질 뿐.
그래서 나도 나 혼자 소소한 계획을 세웠다.
건강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카페로 가서 따뜻한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하나 사서 먹자고.
일어났더니 2시가 넘었다.
밖의 체감 온도는 -3도라고 했다.
뭐, 계획은 계획일 뿐이니 깔끔하게 포기하고 집에서 코코넛우유를 넣어 따뜻한 라테를 만들어본다.
케이크를 못 사 먹었으니, 집에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본다.
원래 식빵 3장은 거뜬한데, 오늘은 집에서 움직임이 없어서 그런지 3개 다 넘어가지 않는다.
내일 점심 회사에서 사과와 계란과 함께 먹자, 생각하며 터퍼웨어 통에 빵 1장을 고이 담아둔다.
계속해서 먹고 싸야 하는 이 사이클이 지겹게 느껴진다.
그리 배가 고프진 않지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먹는 날들이 점점 많아진다.
우와! 무언가를 너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이 탓일까.
그래도 하루를 너무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아,
집에서 사부작사부작거려 본다.
내일은 많이 추워질 것이기 때문에, 옥상에 널어두었던 이불빨래도 탈탈탈 털어서 가지고 오고,
조금이라도 쌓이는 걸 보기 힘들어하는 나는 (이 모습은 아빠와 닮았다.)
얼마 되지도 않은 재활용 쓰레기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가 다 버리고 돌아온다.
잠옷을 입고, 보송보송한 양말을 신고
아주 잠깐 맡는 차가운 공기는 내 폐에 경쾌한 시원함을 선사한다.
뭐 그렇게 나쁘지 않은 추윈데? 생각하는 나에게 가볍게 웃어주며
금세 차가워진 손끝을 뜨거운 물로 씻으며 녹인다.
아침에 요리한다고 엉망을 해 놓은 번잡스러운 작은 부엌도,
마지막엔 알콜솜까지 써가며 깨끗하게 청소한다.
나 외에,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식물 쵹쵹이에게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계란을 까고 남은 껍질에 물을 가득 채워, 물을 준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여기 이사 왔을 때, 5년 전 즈음에 친구한테 받았던 선물인데
3주씩 시간을 비워도, 무럭무럭 자라며 내 곁을 지켜준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큰 잎이 살짝살짝 흔들린다.
나에게 여기 있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쨋든, 기특하다. 원래는 물 안에서 키우는 식물이었는데,
얘가 붙어 있던 통나무는 썩어버렸고, 거기서 자란 잎에 뿌리가 나있기에,
큰 화분을 다이소에서 사 와 흙과 함께 심어줬더니 2배는 큰 것 같다.
대견하다.
내가 하는 거라곤 생각날 때 물을 주고, 영양제를 넣어주는 정도밖에 없는데 말이다.
첫 번째 계획을 수정했으니, 두 번째 계획을 세웠다.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저녁에 먹는 것.
추우니까 배달해서 시켜 먹어야겠다.
난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배달을 잘 시켜 먹지 않는데,
뭔가 연말이고, 나를 위해 소소한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나온 김에 더 늦지 않게 지금 주문을 해야겠다.
참 편한 삶이다.
이렇게 몇 번의 터치만으로, 30분 뒤 우리 집 문 앞에 맛있는 초밥이 와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초밥이 나에게 당연히 올 걸 알기에, 오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미래도 이렇게 주문해 놓고, 온다는 확신을 가지면 진짜 오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미래를 내가 정확히 주문한 적이 있나라는 생각에 미친다.
그저 풍요롭고, 편안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고,
보기 싫은 사람과 행위들을 보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삶.
꽤나 정확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돈 10억을 가지길 원한다는 것은, 지금 내가 돈 10억이 없다는 것의 반증인 것.
그래서 끌어당김 법칙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내가 10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라고.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나와 대화하는 이 시간이 좋다.
최근에 정리한 소개남이 생각이 난다.
무언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던 그 사람.
마지막엔 정확히 내가 왜 불편했고, 부담스러웠는지 알게 해 줬던 그 사람.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많은 사람이 혼자 있는 또 어느 하루지만,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붙여진 날이라 이런저런 생각이 더 드는 연휴.
오늘 저녁엔 초밥으로 크리스마스 만찬을 양껏 즐기고,
이렇게 내 생각을 끄적대고,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하다,
명상으로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너무 늦지 않게 잠들어야겠다.
요즘 많은 일들로 마음이 번잡했던 나에게, 올해 크리스마스는 꽤 괜찮은 하루다.
Merry Christmas to you t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