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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May 20. 2023

세상은 전쟁터와 퀸사이즈베드 그 사이 어딘가

이니셰린의 밴시 리뷰

  끝내 절연의 이유를 듣지 못한 단짝이 있었다.


  그저 이제는 그만 보자는 말로 끝이 났다. 인스턴트커피처럼 배려심 담긴 이지컷 칼집은 없었고, 그래서 나는 혼자 꾸역꾸역 절연과 절단을 처리해야 했다. 이 영화의 순진한 주인공 파우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 것처럼,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어?’

아니. 너한테 잘못이 있는 게 아냐. 더 이상은 안 될 뿐. 내가 들었던 그것과 얼마나 비슷하던지. 나는 영화 시작 10분 만에 이미 양털가위에 싹둑 잘렸다. 아프다, 아파.


  감독은 영화 중간중간 짬을 내어 아일랜드 내전과 이야기가 관련이 있다는 걸 친절히 알려준다. 다만, 알려줄 뿐, 몰라도 충분히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파우릭과 도미닉, 콜름과 시오반, 이 두 그룹 간의 이야기를 오롯이 느끼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조금 실속 없을지언정 다정한 파우릭과 그 나름 여리면서도 성과를 우선하려는 콜름. 파우릭보다 더욱 더 어리숙하고 순진한 도미닉과, 콜름보다 조금 더 여리고 더 냉정한 시오반.


  4명은 각자 해답을 내놓는다. 내가 누군가를, 또는 세상을, 또는 나 자신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타인이란, 세상이란. 어느 날은 순두부보다 더 말캉하고 부드럽다가, 다른 날에는 자동차 없이 자동세차장에 들어간 것 마냥 나를 마구 휘젓고 물을 뿌리고 뒤섞어버린다. 나도 그 사람도 세상도 원래 그렇게 속절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정함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말을 걸면 내 손가락을 자를 테다, 으름장을 놓고서도, 누가 내 친구에게 시비를 걸면 경찰이라도 때려버리고. 친구가 있을 곳을 무너뜨리면서도 그의 강아지만큼은 두 손으로 껴안아서 데려오고. 스스로 물가에 뛰어들지언정 끝내 남을 상처 주지 못했다. 네가 미워도 네 털 끝 하나 건들지 않고 그저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 이들은 이리도 다정하고 또 잔인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떠올렸는데, 그 작품은 산만하고 발랄했다면 ‘이니셰린의 밴시’는 무채색에 잠잠했다. 비슷한 향에 사뭇 다른 결이었다.


  그래서 나는 몸에 힘을 주고, 의식하고 다정해지려 노력한다. 타인도 세상도 낯설고 날카로운데, 우리 모두 언제 서로 찔리고 베일지 모르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베고 베이고 다치겠지. 이렇게 몸에 힘 꽉 주는 나도 실은 자주 날카로워지고, 그걸 보고 놀라서 다시 날을 죽이고, 그러길 반복한다.


  그러다가 작은 한 줌의 행운으로, 이런 사람에게 라면 베이고 잘려도 괜찮겠다,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또 대책 없이 다칠 수밖에. 세상은 이렇게 전쟁터와 퀸사이즈베드 그 사이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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