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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Aug 12. 2017

여행기를 쓰다 보면,

브런치x어라운드 매거진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참여

인생을 긴 여정이라고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해. 인생의 꽃이라는 20대 청춘을 아름답게 보내고 있는 걸까? 다시 안 올 30대라는 시간을 잘 즐기고 가는 건가? 40대는 좀 더 제대로 보고 갈 수 있을까?

종종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여행지 Top 10'이라는 제목으로 여행지 추천 리스트를 보게 된다. 물론 그 추천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없기도 하지.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과수 폭포의 웅장함을 보고 경이로움에 감탄에 마지않지만 어떤 이는 폭포가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셋을 자랑하는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마을에서 줄곧 비 구경만 하다 왔다면 그 아름다움에 동조하기 어려울 거야. 그건 제 아무리 좋은 음식이 차려져 있더라도 자신의 취향이나 상황에 맞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야. 

여행 중에 많은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지. 모처럼 찾아간 런던에서 대모 행렬에 휩쓸렸던 위험했던 순간, 이탈리아 전국에 정전이 나는 바람에 로마행 기차 안에서 12시간 동안 발이 묶여 있던 순간, 프랑스 니스에서 배낭을 통째로 잃어버려 오도 가도 못하고 일정을 망쳐 버렸던 날도 있었고, 인도의 한 기차역에서 코피가 멎지 않아 플랫폼 벤치에 누워 움직이지 못했던 날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었지만, 모든 것이 세상 살아가는 모습인 거야. 왜 하필이면 내가 간 날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그 상황에 대처하는 내 모습이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여행의 본질 아닌가 싶어. 사진으로 보면 될 것을 굳이 그 장소를 찾아 여행하는 것은 그 주변의 모습, 역사, 사람들을 통해 그곳의 의미를 나만의 느낌으로 이해하려는 것 때문이지. 프랑스에서 소매치기를 만났다면 아무리 멋진 에펠탑 얘길 해도 그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20대에 가슴앓이가 있었다면 다시 청춘을 돌려준데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여행을 갈 때, 가서 편하겠노라 바리바리 싸가면 모두 짐이 되는 걸 겪어봐야 짐을 덜어 내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고, 책을 열심히 탐독하고 가도 그 사이 길이 없어졌거나 건물이 사라지거나 환경이 변했으면 거기에 맞게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고, 전혀 준비 없이 낯선 곳에 가서 '낮' 놓고 'ㄱ'자도 모르는 경험으로 손해를 입어 봐야 다음부턴 제대로 준비도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 착오를 줄이기 위해 여행기도 찾아 보고, 가이드 북도 보는 것이 아닐까? 같은 곳에 갔다고 해도 그 순간을 즐기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프랑스에 가면 달팽이 요리와 와인을, 이탈리아에 가면 피자와 에스프레소를, 쿠바에 가면 메케한 매연 연기 속에 마시는 모히토를, 캐나다에 가면 아이스와인을, 로마까지 갔는데 본젤라또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도 못 보고 오면 얼마나 아쉬움이 남겠어. 실제로 그리스에서 며칠 동안 바게트 빵 하나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연명하듯 여행하는 40대 한국 남자를 만났을 때의 실망스러움이 잊히지 않는다. 그러니 삶을 사는 것도 여행을 준비하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미래에 먼저 간 사람의 경험담도 찾아 보고, 자신에게 맞는 게 있으면 시도도 해 보고 그러는 거지. 제 아무리 멋진 곳에 가도 그 상황에 맞는 언어와 행동이 필요한데, 준비가 안 됐다면 괴롭기 밖에 더 하겠느냐고. 인생의 꽃다운 나이 20대, 30대에 살고 있어도 그때에 알아야 할 또는 즐겨야 할 방법을 모른다면 지나가는 동안은 젊음이 짐처럼 느껴질 것이다. 

오랫동안 여행기를 쓰다 보니 이렇게 준비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생기더군.

-여행 갈 곳에 대한 사전 준비: 적어도 통화, 언어, 기후, 사회 상황, 뭘 하고 싶은지 목적을 정하는 일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할 일: 안전하게 다닐 것, 사람들을 만날 것, 그 시간과 상황에 충실할 것

-사진을 보며 여행에 대한 추억을 정리: 이 작업은 여행지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이렇게 정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갈 곳의 리스트가 나오곤 하지.

여행도 다녀본 사람이 더 잘 다니고 그만한 노하우가 생기게 되는 것처럼, 삶도 계획하고 실행하고 누리다 보면 삶의 프로가 되지 않을까?  여행은 어딜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이 가고 싶은 곳이었는지, 누구랑 어떤 모습으로 그 순간을 누리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로마에 있는 집시가 부럽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사는 스무 살이, 서른 살이, 또는 마흔 살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시간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면 그게 모두 짐이 된다.  마흔이 넘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이 목표한 산 하나쯤은 넘어 봤으리라. 산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투자하는 에너지에 비해 막상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머무는 시간은 너무 짧다. 하지만 다음 산을 오르기 위해 길을 가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산등성이, 계곡 등에서 보내게 된다. 그러므로 정상이 아니라고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계속 정상에 머문다는 것은 변화도 없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니까.

멋 모르고 부딪히고 넘어지며 청춘과 맞바꿨던 그 상처들과 정상을 향해 오르고 내리면서 만난 사람들이 40대를 살아내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여행을 준비하고, 다녀와서, 여행기를 써야 비로소 제대로 내 것이 되는 것처럼 삶의 여정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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