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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Aug 12. 2017

35.카트만두에서 소포 부치기

<카트만두 중앙우체국>

트레킹을 한다고 싸 갔던 짐이 꽤 많은 편이었다. 카트만두에서 싱가포르로 가야 했던 일정이라 불필요한 짐들은 모두 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우체국 찾아 삼만리? 숙소에서 걸어서 30여분 가야 하는 거리고, 대중교통은 타서 문제 생길 가능성이 많으니 그냥 걷기로 했다. 트래킹복에 겨울 점퍼에 등산화까지 근 20kg가 되는 가방을 짊어지고 30여분 걷기는 쉽지 않다. 사실 네팔에서 휴대폰 심카드를 사용하고 있어서 3G로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다.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사용하는 구글맵. 분명 내비게이션 상에는 우체국까지 다다른 것 같은데 도무지 벽만 있고 입구를 찾을 수가 없네? 그 주변을 10분 이상 왔다 갔다 하느라 진을 뺀 뒤에야, 큰길에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입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체국 가는 길, 모토 바이크를 탄 사람들의 헬멧 수준은 베트남보다 한 수준 위인 듯. 

겨우 찾은 우체국의 메인 오피스. 

두리번거려 봐도 어디 물어볼 곳이 없다. 이 넓은 오피스에 줄 선 곳이 하나뿐이라 선택의 여지없이 줄을 섰다. 소포를 부치고 싶다니 여긴 일반 우편 업무를 보는 곳이니 건물 옆으로 돌아가라고 알려 준다. 

메인 오피스에서 나와 왼쪽으로 돌아가니 소포 부치는 곳이 나온다. Parcel이라는 표시가 없었다면 여기서 또 헤멜 뻔했다. 여기도 역시 쭉 늘어선 줄. 신청서 쓰는 사람, 짐 포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엉켜 있다.

영어 하는 사람은 없고, 네팔 말로 하느니 바디랭귀지가 최고지. 양손으로 네모를 그리고 글 쓰는 시늉을 했더니 눈치 빠른 아저씨가 서류양식을 준다. 뜨아, 온통 네팔어 가득인 서류양식, 영어가 없다. 동공에 지진난 걸 보았는지 아저씨가 누렇게 헤진 샘플을 내민다. 눈치껏 샘플을 따라 빈 칸을 채웠다. 

서류 작성할 공간도 마땅치 않은데 그 와중에 이 아주머니 아저씨는 무엇을 하시는가 궁금했다.

내 순서가 왔고, 가방만 덜렁 들고 있는 걸 보더니 포장을 해야 한다며 새로운 박스가 아닌 한번 사용했던 박스 아무거나 가져와서 물건을 채우고 테이프로 휘휘 감는다. 그리곤 광목 같은 천으로 박스를 싸고 시침질을 시작한다. 그 옆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들은 이렇게 포장하는 일이 직업이신 듯했다. 하세월 걸릴 줄 알았는데 어찌나 손이 빠른지.

거기가 끝이 아니더군. 또 한편에 앉아 계신 아저씨. 뭔가 불에 달구더니 바느질 한 자리 위로 도장처럼 찍어 낸다. 마치 옛날 서찰을 보낼 때, 그 위에 뜯어보지 못하도록 인장을 찍는 것처럼 바느질 한 자리 위로 여러 곳에 인장을 찍는다. 뜯어보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인 듯했다. 뭘 대단한 걸 보낸다고 법석인가 싶겠지만 우편요금을 보고 이해가 됐다. 일부러 사람들을 써 가며 그런 작업을 하는 이유를. 보내는 요금이 20,000 루피아가 나왔다. 원화로 환전하면 대략 22만 원 정도. 무게도 있고, 거리도 있으니 나올만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네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22만 원이 한 달 수익만큼 되는 사람들도 꽤 많은 정도니까 행여 분실을 하거나 사고가 생기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꼼꼼하게 이런 부분을 챙기는 모습에서 네팔 사람들의 신뢰성과 근면함을 볼 수 있었다. 교복을 입혀 학교를 보내는 모습, 찻길을 갈 때 아이들을 안쪽으로 안전하게 데리고 가는 모습, 아침이면 일찍부터 상점 앞을 각자 쓸어 내는 모습들을 보면서 경제적으로 후진국일 수 있으나, 그들의 정신적인 면, 도덕적인 면, 교육적인 면들에서 인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겨우 포장을 끝내고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더니 이 짐을 들고 짐 부치는 곳으로 다시 가란다. 카드도 안되고, 미국 달러도 안 받고 무조건 네팔 루피아로만 내란다. 22만 원을 루피아로 가지고 다닐 리가 있나. 게다가 다음날이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하는데. 우체국 내부에 환전소도 없고 ATM 기기도 없고 천상 환전소를 찾아 돈을 바꿔 와야 한다. 우체국 문 닫을 시간도 얼마 없고, 이 주변은 초행길인데 어디 가서 찾나? 일단 짐을 맡겨 두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시장 주변이라 찾으면 있을 것 같은 분위기. 발품 팔아 환전해 오는데 한 시간 걸렸다. 소포 하나 부치는데 네 시간은 족히 걸린 듯하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가족들에게 보내는 엽서. 부모님, 형제들 그리고 조카들에게 처음 보내는 국제 우편엽서다. 나중에 동생이 말하길 다섯 살짜리 애들도 이 엽서가 소중하다는 걸 알았는지 엽서를 받아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각자 앨범에 꽂아 놨더란다. 이 모든 것이 도착하는 데 한 달 걸렸다.  물론 그중에 엽서 한 장 분실도 있었다. 가끔 여행지에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해 본다. 그 나라의 행정은 어떻게 돌아 가는지 궁금해서. 이제 네팔에서 할 일은 다 끝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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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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