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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주 Mar 31. 2021

햄버거 좋아해? #stopasianhate

(조금 길어요)

서울에서 요즘 제일 핫한 버거집, 아니 내 맘속에서도 가장 핫한 버거집을 꼽으라면 단연 '노스트레스 버거'다. 해방촌에 혜성처럼 나타나, 용산에서 갱냄으로의 확장과 더불어 성수 그리고 서울을 장악해버린 노랑이들..

인스타그램 #노스트레스버거 결과

노스트레스 버거의 오픈 초기 방문해 그 기본적이고 뻔한 맛에 반해 아직까지도 '흔히 아는 그 맛'을 먹으려고 방문하고 주문한다. 용산에 놀러오는 친구들에게 모두 노스트레스 버거를 소개시켜 줬고, 용산에 사는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아직 노스트레스 버거를 모르냐고 성토했다. 노스트레스 버거의 햄버거는 맥도날드와 같은 레시피 (양파, 피클, 케첩, 머스터드, 치즈 그리고 패티)를 사용하는데 그 무엇 하나 모난 곳도 난 곳도 없이 딱 적당하다  물론 난 오이 피클 싫어해서 빼 달라고 한다. 거기에 사이드로 나오는 할라피뇨 피클은 말해 뭐하며, 감자튀김은 대체 어느 기름에 튀기는지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노스트레스 버거 냠냠


여기까지 읽어본다면 햄버거 덕후가 최애 햄버거 브랜드를 찾은 것으로 보이지만 전혀 반대다. 난 햄버거를 싫어했다. 패티는 한 없이 얇은 경우가 많고 빵이 너무 버거웠고, 수제버거의 경우 이 돈 주고 그냥 고기를 사 먹지... 굳이 조화를 못 이루는 패티와 야채 그리고 빵의 조합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6살 꼬맹이가 먹은 첫 햄버거는 너겟에 밀려 뒷전이었고, 18살 스위스에서 먹은 수제 치킨버거는 맛있었고, 2020년 지나가는 길에 들른 노스트레스 버거는 나에게 '햄버거'는 싫은 음식에서 군침 도는 음식으로 바뀌었다.


사실 그렇다, 내게 햄버거는 주식으로 인정하기 힘든 음식이었다. 빵 두 쪽에 눌려진 고기 한 장 그리고 치즈, 있으나 마나 한 야채인지 피클인지 - 한국인에게는 익숙해지기 힘든 음식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내가 싫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를' 뿐임을 안다. 그리고 서서히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다른' 것들을 통해 흡수하고 배우고 성장한다. 익숙하지 않은 다른 것들이 우리에게 이질감을 주고 때로는 불쾌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야말로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얻게 된다.


나의 넓은 세상 중 한 곳은 대학시절을 보냈던 미국이다. 그리고 나에게 언제나 짙은 향수로 남아있다. 봄이 되면 피어나는 매그놀리아(magnolia, 목련)와 벚꽃, 여름 내리쬐는 햇빛과 태닝 하러 돗자리 하나 슥 들고나온 사람들, 단풍이 지고 땡스기빙을 기대하는 가을, 스노우데이만을 기다리던 겨울 사계절 모두 안 그리운 순간이 없다. 미국이 정말 좋은 것은 다름을 포용한 곳이어서다. 개척한 땅에서 피어난 문화는 각기 다른 개성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쉼터이다. 백인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듯, 흑인만을 위한 나라도 아니고, 아시아계 미국인들만을 위한 나라도 아니다. 그들 모두를 위한- 아메리칸드림을 손에 쥐어준 미국이다. 그리고 우리 동포들이야 말로 아메리칸드림을 쟁취한 뿌듯한 사례가 참 많다고 생각한다. 세탁소, 플랜테이션 농장, 편의점에서 부터 한인식당, 큰 사업장의 주인 그리고 국제적 무대에서 찬사를 받는 배우가 되기까지 아메리칸드림을 방증하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그 옛날 우리 노동자들은 평했던 이들은 말한다 - "한국인들은 참 성실해, 끈기 있어." 그렇다, 우리는 끈기의 민족이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묵묵히 견뎌왔고 버텨내 와 목표한 바를 이뤄낸 민족이다. 그러나, 우리는 침묵해온 민족이다. 우리의 문화는 속내를 드러내기보다 품고 있고, 참고 또 참고 참아낸다.


이러한 우리의 끈기가 독이  줄이야. 우리는 오랫동안 참 많이 참아왔다. 마치 감내해야할 것을 당연히 감내하는 것처럼. 여행을 가서나 외국에 다닐 때 누군가 우리를 보면 막연히 눈을 찢는 행동이나, 길을 걷던 우리에게 “칭챙총” 외치던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기분이 나쁘지만 아시안이니까 쟤네가 몰라서 라며 참아왔다.


몇 달 전부터 아시안을 대상으로 일어난 여러 증오 범죄가 미디어에서 크게 보도되고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충격받은 사건은 2개로, 3월 중순 퀸즈에서 일어난 묻지 마 폭행과,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 약자(예. 고령의 여인)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이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지금 2021년에, 그리워 마지않던 나의 넓은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은 '보통'이 아니다. 전혀 괜찮지 않다.


일어날 수도 있지라며 침묵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던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내가 공격당할지도 모르고, 차별당해도 되고, 나의 할머니 뻘 되는 여성에게 길을 걷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세상에서 꿋꿋이 살아갈 자신이 있는지. 정말 괜찮은지.


#StopAsianH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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